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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고랜드와 한보건설, 그리고 IMF

[칼럼] 레고랜드와 한보건설, 그리고 IMF

기사승인 2022. 11. 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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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이경욱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편입 직전 당시의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을 취재하면서 한국 경제가 백척간두의 위험에 빠져드는 모습을 가슴 아프지만 면밀히 지켜봤다. 장관 등 모든 직원들은 사상 초유의 IMF 체제 편입을 피하려고 밤을 지새우는 등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수시로 시중은행들에 전화를 걸어 금융시장 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 겸 강요하던 한 과장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바닥을 향해 가는 외환보유고는 물론이고 치솟는 시중 금리, 국제신용평가 급락 등을 국민 모두가 안타깝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달러가 넉넉하지 않았기에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IMF 제공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속출했다. 길거리에 내앉은 국민도 적지 않았다. 고귀한 삶을 포기한 국민도 있었다. 침몰 직전의 한국 경제를 구해내려고 국민 모두가 아낌없이 금을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IMF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요구로 한국 경제의 체질이 강화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IMF 체제는 우리 국민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꼭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언제 IMF를 겪었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계 10위권 국가로 급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의 관심을 받은 우리가 또다시 기적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의류, 선박, 한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IMF 체제 극복을 위해 안간힘을 쓴 덕분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 IMF를 떠올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IMF는 아니더라도 2008년 금융위기 재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0여 년의 장기 호황이 끝나고 미국발 긴축으로 시중 금리가 치솟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데다 러시아의 핵사용 가능성 등 글로벌 불안 요인이 대두되면서 경제 주체들이 무척 힘들어하고 있는 요즘이다.

부동산담보대출로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은 치솟는 금리에 힘들어하고 있고 한 저축은행은 급기야 대출을 중단했다. 주택건설업계에서는 이미 중소 건설사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대기업 건설사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중견 및 중소 건설사들은 혹독한 겨울을 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8개 건설사가 도산했다. 이 중 매출액 100억~1000억원 규모 건설사는 4개로,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년과 지난해 도산한 100억~1000억원 규모 건설사가 각각 5개였던 것에 비교하면 훨씬 많다. 건설업계는 불황 여파가 1년 정도 지나 현실화된다고 우려한다. 올해부터 경영난이 시작됐다면 내년 중 최악의 시기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가운데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가 터져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정부가 발 빠르게 긴급 유동성 대책을 마련해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시장 불안은 가속화하고 있다. 한보그룹 부도에서 시작됐던 IMF 위기가 레고랜드 부실로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들릴 정도다.

우리는 IMF 체제를 겪으면서 달러화를 빌려준 IMF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의 요구로 과도한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 정부나 경제 주체 모두가 다가오는 경제 위기에 대처해 상황에 맞는 컨틴전시 플랜(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비상계획)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외환보유고 수준이 탄탄하고 경제 여건이 이전보다 월등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위기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태풍처럼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금융시장의 대응은 적기(適期)와 적시(適時)가 생명이다. 때를 놓치지 않도록 정부 주도하에 민간이 힘을 합쳐야 한다. IMF 체제는 늘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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