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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기대에 걸맞는 성과를 냈다. 만만치 않은 나라들과 엮인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를 거두며 극적으로 16강에 올랐다. 벤투호는 세계 최강 브라질과 16강전에서 1-4로 패하며 여정을 마무리했지만 2010 남아공 대회 이후 12년 만의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을 이룬 대표팀 선수들에게 많은 국민들이 감동하고 환호했다.
과정도 좋았다. 대표팀은 벤투 체제 하에서 총 57경기를 치러 35승 13무 9패의 성적을 낳았다. 매번 본선 티켓을 따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벤투호는 10차전까지 치른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이례적으로 8경기 만에 본선 행을 확정했다.
이제 월드컵은 끝났고 한국 축구는 다음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전망이 썩 밝지는 않다. 탄탄하지 못한 선수 기반, 대한축구협회 차원의 지원 문제 등 풀어야할 숙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의 그늘은 역설적이게 해외파들과 얽혀있다. 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빛나는 손흥민(30·토트넘)을 비롯해 김민재(26·나폴리), 이강인(21·마요르카) 등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표팀의 기량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양상을 반복해왔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성인 대표팀의 거듭된 한일전 0-3 완패가 이를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비단 A대표팀뿐 아니라 전 연령대에 걸쳐 한국은 일본에 최근 4연패(스코어 0-12)를 당해 충격을 더했다. 더 참담한 현실은 경기 내용이었다. 한국은 하나같이 일방적으로 무너졌다. 한 축구인은 "어린 선수 때부터 자꾸 지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중국이 한국에게 느낀 '공한증'처럼 우리는 '공일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몇몇 엘리트 선수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반면 일본 축구는 장기 계획 하에 꾸준하게 넓혀온 저변에서 축구가 꽃을 피우고 있다.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합쳐 한국에서 축구를 즐기는 인구는 약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에 반해 일본은 5배인 500만명에 달한다. 그나마 엘리트 축구도 일본에게 따라잡히는 형국이다. 벤투호의 주축 멤버였던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은 "우리가 일본과 똑같은 성적을 냈다고 해서 일본 만큼의 환경을 가지고 있느냐는 생각은 안 드는 거 같다"고 꼬집었다.
월드컵이 끝난 후 우려대로 축구 열기는 빠르게 식고 있다. 이는 한국 축구의 뿌리인 K리그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프로축구는 갈수록 떨어지는 인기에 신음하고 있다. 축구 해설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신문선(64)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프로축구 같은 경우 월드컵은 특수 시장"이라며 "1990년대부터 예상된 일이지만 이런 특수 시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미래를 내다볼 때 암울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프로축구는 브랜드 파워를 가지지 못하고 쇠퇴하는 것"이라며 "향후 한국 축구가 아시아에서도 고전할 수 있는 신호를 받고 있다. 결국 인기가 떨어지면 투자가 사라지고 투자가 없으면 인재개발 비용이 줄어든다. 대한축구협회는 변하지 않고 안주하다 보니까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