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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후지와라 오페라단에서 공연한 오페라 '토스카'를 도쿄 우에노 문화회관에서 관람했다. 이번 방문은 팬데믹 이후 일본 및 도쿄의 오페라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으나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었다. 이번 '토스카'의 주역을 재일교포 3세 소프라노인 이천혜(일본명 : 사다야마 치에)가 맡은 것이다.
소프라노 이천혜는 재일한국인 3세로 일본 돗토리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밀라노 시립음악원을 졸업했다. 이후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고 한국에서도 독창회를 개최한 바 있다. 현재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등 일본의 다양한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후지와라 오페라단에는 2012년 입단했으며, 이번 '토스카'가 그의 후지와라 오페라 첫 주역 데뷔가 된다. 2021년 11월 오디션에 합격한 후 장장 1년 4개월 가까이 준비한 무대였다.
지난달 28일, 29일 양일간 공연된 '토스카'에서 이천혜는 29일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장의 문이 열리고 관객이 자유롭게 입장하는 동안 해설자가 나와서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해줬다. 필자도 중간부터 듣게 됐으나 작품의 배경지식은 물론이고 감상 포인트, 연출의도, 성악가 소개 등 소상한 해설이 동반돼 관람 직전 관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시게타카 마츠모토가 연출한 무대는 상당히 고전적인 형태를 지향했다. 성악가들의 연기를 비롯해 무대장치, 의상, 조명 등등 전반적으로 '토스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지 않는 방향으로 작품이 전개됐다. '토스카'는 레지테아터(Regie-Theater·시대나 배경 설정 등을 자유로이 바꾸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나 변용이 비교적 드문 오페라로 꼽힌다. 최근 오페라의 경향도 점점 연출가 중심의 무대로 바뀌는 것을 생각하면, '토스카'의 이러한 고정성은 독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아마도 오페라 '토스카'가 가진 강력한 멜로드라마적인 성격과 등장인물 세 사람의 뚜렷한 개성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후지와라 오페라의 '토스카' 또한 이러한 특성을 잘 살린 무대였다. 1막에서 마지막인 3막까지 '토스카' 하면 떠오는 미장센으로 구성됐고, 기본적인 요소 하나하나가 작품 원형에 충실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칫하면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든 것은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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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라도시를 노래한 테너 타쿠야 후지타 역시 열정적인 연기와 가창을 선보이며 이천혜와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1막 도입 부분 '오묘한 조화로다'를 무난하게 소화한 그는 2막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분출하는 듯 했으나 3막에 이르러 '별은 빛나건만'과 토스카와의 사랑과 이별을 절절히 표현하며 몰입을 높였다. 스카르피아 역할의 바리톤 신고 수도 또한 사악한 경시총감을 무리 없이 해내 갈등을 증폭시켰다.
에리나 스즈키가 이끄는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격정과 서정을 넘나드는 '토스카'의 선율을 잘 뒷받침했다. 특히 3막 초반에 들려온 첼로의 음색은 토스카의 살인과 스카르피아의 죽음으로 끝난 2막의 충격을 정돈하고 새벽별이 반짝이는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이번 오페라에서 음악과 연출의 섬세한 묘미가 부각된 가장 부분이라고 하겠다.
예년과 다를 것 없이 완성도를 갖춘 무대에서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1막 '테데움' 장면에 성직자와 성가대, 신자들로 등장한 합창단이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도 아직 코로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날의 일본 오페라는 우리와는 달리 활력과 의지가 엿보였다.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인해 엄혹했던 2여년 전, 어찌됐든 2023년에 공연될 오페라를 계획하고 우직하게 준비해온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노력은 이날 객석의 열광적인 박수로 보답을 받았다고 본다. 그 무대의 중심에 재일한국인 소프라노 이천혜가 있어 더욱 뿌듯하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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