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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의 유통피아]기업들이여, 당장 단두대로 걸어가시라?

[최성록의 유통피아]기업들이여, 당장 단두대로 걸어가시라?

기사승인 2023. 03. 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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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업 압박, 시장경제 어긋나는 행동될 수 있어
정치적 압력에 따른 가격 통제는 결국 몇 배의 고통으로
최성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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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건립이념인 자유·평등·박애는 혁명시대 정치인 로베스피에르의 작품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와는 거리가 먼 공포 정치 및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같은 이유로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지만 2023년 3월, 대한민국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복잡하고 미묘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바로 그가 구축한 'La loi du Maximum' 즉, 생필품 가격상한제 법 때문이다.

# 프랑스혁명 직후 파리는 시민들의 폭동 없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빵, 고기, 우유와 같은 생필품 가격이 연일 폭등하는 것에 불만을 갖고 집회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들까지 가세했다. 과격하게 변질된 항의는 결국엔 빵가게 주인들에게 가격을 내리라며 폭력을 행사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당시 정국을 주도한 빈민 대중들은 "식품 투기꾼들이 암약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가격상한제를 청원했다.

프랑스 정부의 독재자 로베스피에르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생겨난 생필품 가격상한제 법은 30여 가지가 넘는 식품 즉, 고기·설탕·맥주·생선·포도주·버터 등에 가격 상한을 설정한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가게에 물품의 최고 가격을 붙여 놓았다. 만약에 이들 가격 중에 법으로 정해진 최고가격을 초과한다면 관계 기관에 고발당했다. 상인들은 최고가격을 위반한 가격의 두 배를 벌금으로 내야만 했다.

# 가격상한제는 빈민들을 위해 만든 법이었다. 의도는 좋았지만...그뿐이었다. 이후 프랑스에는 대재앙이 도래하게 된다.

제값을 못 받을 것을 우려한 농부들은 생산한 작물을 숨겼다. 결국 식품 부족이 심화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품질까지 최악으로 치달았다. 후추 안에는 타고남은 재가 들었고, 질 낮은 부스러기를 뭉쳐 고기로 팔았다. 올리브유는 돼지기름으로 채워지면 다행일 정도였다.

결국 암시장이 창궐했으며, 시민들은 더 비싼 가격으로 식료품을 구입해야만 했다.

시장경제는 각 경제주체들이 자기 책임하에 자유로운 영리활동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이다. 공급과 수요를 통해 시장이 가격을 결정한다.

시장경제 체제에 정부의 섯부른 손가락질은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 정부가 물가 억제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기업에 대한 군기잡기로 바라보기도 한다. 금융에 이어 정유, 항공에 이어 이제는 주류업계, 식음료업계가 타깃이 됐다.

정부가 이렇게 나서는 이유는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지만 소비자 어려움은 외면하고 있다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소주의 경우 원료비 인상으로 올 초부터 가격 인상설이 나오고 있었다. 이미 병뚜껑과 빈병 등 가격 역시 인상된 바 있다. 맥주업계 역시 오늘 4월부터 맥주 1ℓ당 기존 855.2원에서 885.7원으로 세금이 오른다. 하지만 정작 하이트진로, 롯데칠성, 오비맥주 등과 같은 업체들은 인상을 공식화하지 않았다.

주요 주류 회사들이 "출고가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는데도 정부가 소주값 인상에 제동을 건 것은 일부 식당, 주점 등에선 벌써 소주값이 고공행진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일부 식당들은 출고가 인상여부가 결정되기도 전에 소주값을 올렸다. 소주값 6000원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경고등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자, 엄밀히 따지면 중간 유통업체, 음식점들이 세금 인상을 핑계로 6000원 이상 올리거나 올린 예정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류 가격에 대한 지탄은 생산 업체들이 다 감내 중이다. 심지어 실태조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정부의 압박까지 받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기업들에 힘을 실어주고 응원하겠다는 현 정부 초기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CJ제일제당, 풀무원, 동서식품 등 12개 주요 식품업체 대표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물가안정을 위해 올해 상반기에는 식품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곧바로 일부 업체는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당연하다.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간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국민여론까지 좋지 않다. 그냥 때리면 때리는 대로 두드려 맞는 수밖에.

# 되짚어 볼 문제는 또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억눌렀던 가스요금은 윤석열 정부에서 폭탄이 되서 돌아왔다.

정치적인 압력을 가해 가격을 조절한다면 그것은 미봉책에 자충수만 될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고통을 잠시 외면할 수만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서는 몇 배의 희생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토록 전정부의 실기(失期)를 비판한 현정부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건 아닐는지...

아울러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냈던 로베스피에르처럼 기업들을 단두대로 몰고 있는건 아닐는지...

역사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더 이상의 실수가 되풀이되선 안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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