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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상옥의 지혜를 기대한다

[칼럼] 임상옥의 지혜를 기대한다

기사승인 2023. 03.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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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웅 변호사·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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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웅 변호사·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장
건국 이후 최대 위기상황이다. 작년 7월 미 의회는 반도체칩·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이 포함됐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하고, 미 안보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해야 하며, 향후 10년간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 설비를 늘려서도 안 된다. 우리 반도체 산업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고, 핵심 기술을 들여다보겠다는 내용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2월 23일 "우리가 생각하는 최종 목표는 미국이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능력을 갖춘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한민국과 대만이 주도하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앞으로는 미국 영토 내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설계와 시스템반도체 압도적인 1위인 미국이 이제는 생산까지 전부 다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본심이다.

한국은 오랜 세월 메모리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에 이르는 폭넓은 반도체 기술을 축적해 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70%, 2022년 반도체 수출액은 1292억 달러(약 169조원)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약 18%에 달한다. 반도체 산업은 국민 경제 전반에 막대한 파급 효과를 미친다. 또한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기술이 곧 안보인 시대이다.

미국 의도대로라면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서서히 쇠퇴하고 국가 위상은 현저히 추락하리라는 점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미국의 보조금을 받지 말야야 할까?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지 말아야 할까? 파운드리만 떼어서 분사시켜야 할까? 아니면 저급 반도체만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해야 할까? 미국의 의도가 명확한 지금 그 어떤 처방도 우리 반도체 산업을 살리는 해법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말 그대로 '죽을 자리(死地)'에 든 것으로 보인다.

최인호 작가가 쓴 <상도>를 읽어보면 '죽을 자리'에 든 임상옥의 이야기가 나온다. 청나라 연경의 상인들은 조선의 인삼왕 임상옥이 가져온 질 좋은 홍삼 5000근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불매담합을 한다. 임상옥은 홍삼의 가격을 내려도 죽고, 가져온 인삼을 조선으로 도로 가져가도 죽는다. 그때 과거 스승의 비책인 한 글자, '사(死)'를 참구하기 시작했다. 조선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자 임상옥은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곤 인삼을 태우기 시작한다. 인삼의 반 정도가 불에 타고 나서야 연경 상인들은 불을 끄라고 매달리기 시작한다. 불에 탄 인삼으로 손해 본 가격을 모두 중국 상인들이 떠맡기로 한다. 결국 임상옥은 홍삼을 모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었다. 죽으려고 했더니 살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4월 우리 정상으로는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임상옥의 '죽을 자리'가 개인적 상업의 영역이라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죽을 자리'는 인구 5000만 대한민국의 흥망이 걸려 있다. 무난한 정상회담으로 서서히 삶겨 죽는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가 될 것인가? 임상옥의 지혜를 발휘해 사지(死地)를 타파(打破)할 것인가? 메모리 반도체 압도적 세계 1위. 파운드리 반도체 세계 2위. 워싱턴으로 싣고 가는 홍삼 5000근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 국민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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