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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라벨라오페라단 ‘로베르토 데브뢰’ 국내 초연

[손수연의 오페라산책]라벨라오페라단 ‘로베르토 데브뢰’ 국내 초연

기사승인 2023. 05.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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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3부작 완성에 걸 맞는 화려한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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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의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의 한 장면./제공=라벨라오페라단
가에타노 도니제티가 작곡한 오페라 '안나 볼레나'(1830), '마리아 스투아르다'(1835), '로베르토 데브뢰'(1837)는 모두 영국 엘리자베스 1세와 관련 있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여왕 3부작으로 불린다. '안나 볼레나'는 엘리자베스 1세의 모친인 앤 볼린이 주인공이고,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사촌지간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의 삼각관계가 중심이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는 엘리자베스 1세가 사랑한 2대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루고 있다. 모두 튜더왕조 시대의 실존 인물들이고 오페라에 알맞도록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허구를 결합한 팩션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시리즈가 70여 편이 넘는 도니제티 오페라 가운데 으뜸으로 잘 알려졌거나 인기 있는 작품들은 아니다. 그러나 영국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시대의 인물과 사건들을 벨칸토예술로 승화해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존재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오페라 역사에서도 이 여왕 3부작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다. 라벨라오페라단이 지난 2015년 '안나 볼레나', 2019년 '마리아 스투아르다', 그리고 올해 제14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로베르토 데브뢰'를 한국 최초로 무대에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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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의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의 한 장면./제공=라벨라오페라단
세 편 모두 뛰어난 실력의 성악가들의 음악과 화려한 무대장치로 꾸며져 그랜드 오페라로서 완성도 또한 높았기 때문에 더욱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작품으로 보다 많은 관객을 확보해야만 제작비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민영오페라단의 입장에서, 이러한 시도는 무모하다 할 정도로 용감한 도전이었다.

라벨라오페라단의 '로베르토 데브뢰'는 이러한 연작의 화려한 완결로 손색이 없었다. 여왕 3부작의 국내 초연 달성이라는 이 작품의 의의 외에도, 이번 오페라를 보면서 강하게 느낀 점 한 가지는 한국 오페라의 세대교체가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한 성악가들 중 몇몇은 현재 외국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으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라이징스타들이다. 이들은 놀랄만한 기량을 선보이며 기존 성악가들과 조화를 이룬 공연을 펼쳤다. 2023년 한국 오페라는 기존의 인정받던 성악가들이 건재한 가운데, 새로운 스타급 성악가들이 샛별처럼 등장하는 양상이다. 우리 오페라 무대의 세대교체가 치밀하고도 탄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28일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엘리자베타 역의 소프라노 박연주, 데브뢰를 노래한 테너 김효종, 사라를 맡은 메조소프라노 최찬양도 그러했다. 박연주는 송곳 같은 고음과 카리스마 넘치는 음색으로 고독한 여왕을 잘 표현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후반으로 갈수록 파워가 넘치는 강렬한 가창을 들려줬다. 김효종은 벨칸토 테너의 정석과도 같은 맑은 발성으로 팽팽한 힘과 긴장의 무대에 한 줄기 서정성을 부여했다. 그는 3막 데브뢰가 감옥에서 부르는 아리아 '아직도 저 두려운 문이...'를 완벽한 기교로 매끄럽기 그지없이 노래해 큰 갈채를 받았다. 메조소프라노 최찬양도 갈등과 고뇌가 많은 사라 역을 애절하게 표현했다. 이들은 노팅엄 공작을 맡은 바리톤 정승기의 유연하고도 풍부한 성량, 뛰어난 목소리 연기 등과도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 특히 정승기는 이미 다양한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는 바리톤이지만 이번 오페라에서는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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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라오페라단의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 커튼콜 장면./제공=라벨라오페라단
연출가 김숙영은 벨라스케스의 바로크풍 회화를 연상케 하는 무대를 다양하게 회전시켜 활용하고 때로는 전진시키며 평면적인 공간을 넘어선 입체적인 드라마로 완성했다. 그는 연극성을 강하게 부각해 인물의 심리와 배경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실바노 코르시가 지휘한 베하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현악 파트가 멜로디의 서정성과 결을 살린 연주를 들려준 반면, 목관 파트에서는 투박한 거친 소리가 종종 들려 아쉬움으로 남았다.

도니제티가 여왕 3부작을 전부 공연하는데 만 7년이 걸렸다. 라벨라오페라단도 '안나 볼레나'를 초연한 이래 '로베르토 데브뢰'를 공연하기까지 똑같이 만 7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강호 라벨라오페라단장의 뚝심과 의지에 큰 박수를 보낸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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