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6.25 전사 ‘호국 형제’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

6.25 전사 ‘호국 형제’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안장

기사승인 2023. 06. 06. 11:18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고 김봉학 일병, 73년 만에 동생 곁에 뭍혀
윤석열 대통령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 거행
현충일 추념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6·25 전쟁 당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청춘과 생명을 기꺼이 바치고 전사한 형제가 전쟁 발발 73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국방부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유가족과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주요 인사, 군 주요 지휘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故) 김봉학 일병(형)의 안장식을 거행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고인들의 형제애와 희생정신을 기리는 차원에서 '호국형제'라고 명명했다"며 "안장식은 현충일 추념식 전에 최고의 예를 갖춰 거행됐다"고 설명했다.

안장식은 영현봉송을 시작으로 고인에 대한 경례, 헌화 및 분향에 이어서 하관후 두 형제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비산동의 흙으로 허토를 하고, 조총 및 묵념 순으로 진행됐다.

'호국형제'의 묘가 국민 모두에게 고귀한 희생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호국의 명소가 될 수 있도록 묘비 앞에 고인의 조카가 보내온 추모글과 전투경로가 새겨진 추모석도 설치됐다.

고 김봉학 일병 유해는 동생이자 전우인 고 김성학 일병 바로 옆에 묻혔다. 동생인 고 김성학 일병 유해는 전투에서 전사한 직후 수습돼 1960년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지만, 형인 고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찾지 못해 현충원에 위패만 모셔둔 상태였다.

형제는 전쟁으로 헤어진 지 73년 만에 넋으로나마 다시 만나게 됐으며 6·25 전사자 형제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묻히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고 김봉학 일병 유해는 지난 2011년 강원도 양구군 월운리 수리봉에서 최초 발굴됐고, 2016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수습됐다.

고 김봉학 일병은 1923년 9월에 태어나 전쟁이 한창이었던 1950년 8월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 후 국군 제5사단에 배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여러 전투를 거친 후 '피의 능선 전투'(1951.8.18. ~ 9.5.)에 참전 중 산화했다.

고인은 횡성-포동리 전투, 태기산 전투, 인제 지구 전투 등에 참전했으며, 이후 1951년 9월 5일 5사단 35·36연대와 미 2사단 9연대가 북한군을 상대로 수리봉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피의 능선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형을 뒤따라 1950년 11월경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한 동생 고 김성학 일병은 국군 8사단 21연대 소속으로 평안남도 순천 인근까지 진격 후 중공군 2차 공세로 38도선까지 철수했다. 이후 1950년 12월 24일 38도선 일대를 방어하는 강원-춘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근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조국을 위해 산화한 형제가 뒤늦게 넋이 되어 만난 사연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이들의 형제애와 고귀한 희생정신의 의미를 기리는 차원에서 한자리에 나란히 모셨다"고 밝혔다.

두 형을 한 자리에 모시게 된 막내 동생 김성환 옹은 "죽어서도 사무치게 그리워할 두 형님을 넋이라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 꿈만 같다"며 "두 형님을 나란히 안장할 수 있도록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