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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칼럼] 경자유전에서 농지농용(農地農用)으로 전환하자

[김은경 칼럼] 경자유전에서 농지농용(農地農用)으로 전환하자

기사승인 2023. 09. 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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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제는 농지규제 걷어낼 때 <1>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그에 기반한 자작농주의는 1949년 농지개혁 이래 한국 농업과 농지제도를 지탱해 온 이념적 기반이다. 경자유전은 농사를 직접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자작농주의는 임대차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경자유전의 원칙과 소작제도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동조 제2항은 농업 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 이용을 위한 부득이한 경우에 임대차 허용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 자체가 모순적이다. 선진국 가운데 경자유전을 헌법에 적시하고 표방하거나 임대차를 금지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경자유전의 원칙은 한국 농업의 금과옥조로 한국경제의 급성장과 산업구조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70여 년 이상 유지되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저발전 농업국가에서는 농민의 소득과 생계를 보장하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1940년대 한국은 농업 중심 경제였기 때문에 경자유전은 국민 대다수인 농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 된 21세기 한국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농민들을 빈곤하게 만든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한국 농업을 영세하고 노동집약적으로 만들었으며 농업을 저생산성의 낙후된 부문으로 만들었다. 2021년 기준 총부가가치 대비 농림어업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전 산업 부가가치의 2.0%이고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2022년 기준 총 취업자 수의 5.4%인 152만6000명이다. 많은 농민이 부가가치가 낮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자유전은 자작에 기반한 소농을 보호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경자유전은 임대차 활성화를 통한 영농규모의 확대와 농업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봉쇄하여, 산업으로서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업에서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땅을 사지 않고 농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여 농업으로의 자유로운 진입도 어렵다. 농민도 자본주의 경제주체이다. 경자유전에 기반한 농지규제로 인해 농지가격은 다른 개발 용지들에 비해 가격이 매우 낮아 농민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농지전용이 어려워 재산 가치의 실현이 어렵기 때문에 농민은 농사를 중지하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

농촌소멸론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의 발전과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경자유전의 원칙은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농촌인구의 고령화, 농촌인구의 감소 및 영농후계자의 부족 등으로 인해 농지소유자들은 적절한 가격에 농지를 판매하거나 자유로운 임대차가 필요하다. 2022년 기준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9.8%로 한국 고령인구 비율인 18.0%를 훨씬 상회하고 있고, 농업 경영주의 평균연령은 68.0세이다. 2022년 기준 임차 농가 비율은 전체 농가의 50.0%이고 임차농지 비율도 46.9%이다. 지적법상 농지에 속해있지만 경작하지 않는 미경작 농지는 2022년 기준 전체 농지의 17.3%나 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으로 인해 농지는 버려지고 편법적, 불법적 농지전용이나 이용은 늘어나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과 그에 기반한 자작농주의는 농지와 농업의 양적 유지 및 확대를 통해 농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명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농업을 피폐화하고 농업경쟁력을 저하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경자유전에 기반한 농지의 양적 보전을 농지정책의 핵심 목표로 하면서도 농지를 신도시나 산업단지 조성 등 국가적 개발사업을 위한 개발 여력으로 간주하여 농지전용을 주도해 왔다.

이제 기술혁명과 함께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면서 '땅과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시스템이 '기술'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 중이다. '땅'이라는 핵심 생산요소의 의의가 급격하게 줄고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인간에 의한 직접 경작의 의미와 범주에 대한 재규정이 필요하다. 기술혁명 시대에 농업은 '경작' 행위를 넘어 농업 R&D부터 플랫폼 기반 마케팅까지 생태계를 확장해야 한다. 그러나 경자유전의 원칙이 한국 농업을 기술혁신의 사각지대로 만들고 있다.

대만은 농업 위기에 직면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을 폐기하고 농지농용(農地農用)의 원칙으로 전환하였다. 농지는 농업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하지만 반드시 농민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농지 이용을 장려하기 위하여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제 혜택도 주지만, 비농업인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한국도 경자유전에서 농지농용 원칙으로 전환해야 한다. 농지를 보전하기 위한 농지정책의 핵심은 누가 농지를 소유하든 농업용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농지농용이 돼야 한다. 특히 농지의 무조건적 보호가 아니라 경작하는 농민을 지원하는 것이 농업정책의 핵심이다. 경작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농민의 이익 실현과 직업군으로서의 농민 보호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임대차는 영농규모의 확대를 통한 농업의 경쟁력 강화와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한 유력한 수단이다. 투명한 농지임대차 제도를 정립하고 합법화하여 임차농을 보호하고 휴경지 증가로 인한 농업의 피폐화를 막아야 한다. 기업이 농업 부문에 투자한다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농업이 신산업으로 발전하고 기술혁신도 가능하다.

헌법에 규정된 경자유전 원칙이 농촌과 농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지만,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헌법개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분리하여 이용자인 경작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당장은 농지농용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농지법이나 관련 법을 개정할 수 있다. 농지나 농민의 개념도 기술혁명의 시대에 맞게 수정하고 농지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농업인이 농지에서 경작행위를 할 수 있도록 '자경'에 대한 정의도 바꾸어야 한다.

농업의 발전, 농민의 재산권 강화와 농지의 합리적인 보전을 위해 시대착오적인 경자유전의 원칙을 농지농용 원칙으로 전환해야, 농민이 살고 농촌소멸을 막을 수 있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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