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등락에도 40년 이어온 SK그룹 의지
정부도 손 놓은 해외자원개발에 민간기업 쾌거
재계에선 잊혀진 ‘기업가정신 부활’ 호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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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날 국제 원유시장에서 두바이유는 배럴당 93달러를 돌파했다. 불과 6~7년새 산유국간 치킨게임으로 배럴당 20달러대의 '초저유가' 시대를 맞이하더니, 다시 100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가 예고되며 나날이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
SK가 자원 개발 꿈을 품고 달린지 약 40년, 국제유가는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등락을 반복했고 비전에 대한 명암도 엇갈렸다. 심지어 정부 마저 포기한 해외유전개발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건 꺾이지 않은 SK그룹 부자(父子)간 의지의 결실이라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온다.
1970년대 직물사업에 집중하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제1·2차 오일쇼크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뒤흔드는지 지켜보며 석유사업에 대한 꿈을 품었다. 당시 최 선대회장은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한국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출금지를 풀어내고 하루 5만 배럴의 석유를 한국에 공급하는데 중요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했다.
그렇게 오일쇼크를 방어해 내던 1980년 12월 최 선대회장은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SK의 전신 ㈜선경은 국내 최대 정유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이노베이션)의 지분 50%를 미국 걸프사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창업회장의 꿈인 '쇳물부터 자동차까지'가 현대제철을 세우며 해소 됐다면, 최종현 선대회장의 꿈인 '섬유부터 석유까지'는 이때 이뤄졌다.
유공 인수 직후 최 선대회장은 자원기획실을 설치해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산유국으로 만들어 '에너지 안보'에 대응하겠다는 보국 청사진이 처음 그려진 게 이때다.
해외자원개발은 정부마저 손 놓은 사업 중 하나다. 2018년 정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한 해외자원개발 실패의 이유를 물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중심으로 한 자원공기업 통폐합 시도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의 신자원개발 정책의 핵심은 관련 사업을 최대한 민간에 이양하자는 게 골자였고 그 중심에 있는 기업이 포스코와 바로 SK다. 포스코가 가스와 광물에서 성과를 냈다면, 원유 개발에선 드디어 SK가 빛을 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SK그룹은 그간 인도네시아·아프리카 광구 개발에 참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회의론이 번졌지만 최태원 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E&P(석유개발) 사업에 대해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2021년 물적분할해 SK어스온을 차리면서 재차 드라이브를 걸은 바 있다.
일각에선 잃었던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SK의 해외유전개발 성공은 목표를 향해 과감히 도전하는 기업인의 덕목이 우리나라 재계 창업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