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lip20231120160727 | 0 |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HD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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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HD현대의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30대 젊은 나이로 2015년 임원에 오른 정 부회장은 조선업황이 암흑기를 거치는 동안 착실히 미래를 준비해왔다. 특히 선박 운항 기술 등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며 조선업 전체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썼다. 이제 다시 수주 사이클이 돌아오며 호황을 바라보는 지금, HD현대는 조선업에 첨단 기술을 더하고 건설기계, 에너지 분야에도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면서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정기선 부회장은 지난 2013년 수석부장으로 회사에 복귀한지 약 10년만에 부회장에 올랐다. 이미 2년 전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지만, 이번에 부회장으로 올라서면서 책임경영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부회장 아버지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복심'인 가삼현 부회장이 용퇴한 만큼 세대교체가 더욱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2006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근무하던 정 부회장은 유학을 떠났다가, 2013년 수석부장으로 회사에 복귀했다. 당시 회사 핵심 사업인 조선업은 불황이 깊어지며 적자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후 10여년간 위기는 지속됐다. 이 시기 정 부회장은 기획실, 재무부문, 영업총괄 등 회사 핵심 부서를 총괄하는 역할을 거쳐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강구했다. 자율운항·친환경 에너지 사용 선박 등 기술 기반의 신사업에 초점을 맞추며 미래를 준비했다.
올해 초 CES에서도 정 부회장은 바다에 대한 관점과 활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오션 트랜스포메이션'을 미래 전략으로 제시하고, 자율운항·친환경 에너지 추진 등을 과제로 내세웠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아비커스가 꼽힌다. 선박 자율운항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로 정 부회장이 직접 발굴해 키운 사내 벤처다. 아비커스는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2단계 상용화에 성공했고, 누적 수주만 350만대를 넘어서고 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도 정 부회장의 경영 성과 중 하나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 개조 및 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정 부회장이 직접 자회사로 출범시켰다. 정 부회장은 당시 친환경 선박 개조 사업의 성장성을 토대로 임원들을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표이사 경력도 이 회사에서 시작했다. 현재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설립 3년여 만에 매출액이 3배 늘어나고, 성장성을 인정받으면서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짧지만 굵직한 10년의 경력으로 경영 능력을 입증한 정 부회장은 이번에 승진하면서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했다. 가삼현 부회장이 물러나고, 뒤를 이어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를 맡게 된 김성준 HD한국조선해양 부사장이나, HD현대로보틱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김완수 HD현대 경영지원실장이 대표적이다.
김성준 부사장은 정 부회장이 보스턴컨설팅그룹 재직 시절 연이 닿아 2016년 현대중공업 기획실에서부터 호흡을 맞췄다. HD한국조선해양이 조선업 중간지주사로 그룹을 좌우하는 투자 및 경영 전략을 총괄하는 만큼, 정 부회장의 신사업 전략을 현실화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김완수 부사장은 정 부회장이 삼성물산에서 영입해온 인물이다. HD현대에서는 신사업 추진실에서 정 부회장과 함께 근무했다. HD현대로보틱스는 최근 로봇 사업이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계열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경영 측면에서는 승계 및 세대교체가 착실히 이뤄지고 있지만, 낮은 지분율은 과제로 남아있다. 정 부회장은 지배구조 최정점인 HD현대 지분 5.26%를 보유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건설기계, HD현대일렉트릭 지분도 일부보유하고 있지만 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부친인 정 이사장이 HD현대 지분 26.6%를 보유하고 있으나, 해당 지분을 상속·증여받기 위해서는 세금을 낼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이 40대로 젊은 편에 속하는 만큼, 자회사 성장 등을 통해 배당을 확대하고, 지분을 인수해 나가는 방향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재계 관계자는 "IPO 등으로 자회사를 성장시키면서 지주사 배당 규모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재원 마련이 예상된다"며 "당장 승계가 급한 시점이 아닌 만큼, 신사업을 육성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