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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옭아맨 사법리스크 최종 향배가 내년 1월 26일 선고로 정해진다. 모든 사건이 얽힌 8년간의 복잡한 합법 여부와 각종 절차 문제를 떠나 리더로서 내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단은 어떤 경영 성과를 가져왔을까. 중심에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1등 CMO(의약품위탁생산) 기업이 됐고 환난의 시기, 국가 백신안보에까지 기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법원에 발이 묶인 지금도, 우리 수출의 20%를 책임진 반도체 산업 부활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 우리 경제를 책임질 결단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사법리스크 와중에도 부산엑스포 유치와 윤석열 대통령의 경제외교 지원을 위해 유럽 출장길에 오르는 등 사회적 책무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최원영·정문경 기자 = "삼성물산 주주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오는 7월 17일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개최합니다. 합병을 통해 바이오 사업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엘리엇은 주주총회에서 합병을 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미래가 방해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삼성물산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를 자회사로 갖고 있던 제일모직 간 합병을 결정하는 이사회를 코앞에 둔 2015년 여름, 삼성물산이 대대적으로 신문에 낸 광고다.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이 주주들을 부추기면서 표대결이 이뤄지던 터라, 애 타는 내부 상황이 공개적 주주서한에 여과 없이 담겼다.
지난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이 사건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배구조를 투명화, 단순화하라는 사회 전반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법정 최후진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재계에선 합병 후 기업 성적표가 이 회장의 결단을 지지해 준다고 입을 모은다.
◇ 삼성물산 자회사 '삼바'… 이제 韓 바이오산업 미래 이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은 2018년 증권선물위원회가 대검찰청에 외감법 위반 등 혐의로 삼바를 고발한 지 꼭 5년 되는 날이다. 이 회장 발목을 잡은 사법리스크 시작인 셈이다.
당시 엘리엇 등은 삼성물산과 합병하려는 제일모직의 가치가 크게 고평가됐다면서 합병을 반대한 바 있다. 정말 고평가였을까. 합병 후 8년, 지난 3분기 삼성물산의 연결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2조2432억원으로, 이 중 삼바를 중심으로 한 바이오부문이 7448억원을 차지했다. 몸집으로만 따지면 연결기준 총 62조4840억원의 자산총액 중 25.6%인 16조원이 바이오부문에서 나온다. 17.9% 비중의 건설과 8%의 상사를 합한 것보다 크다.
삼바 시가총액은 상장 당일인 2016년 11월 10일 기준 9조5277억원에서 이날 기준 51조2453억원으로 5배 이상 커졌다. 영업이익은 올해 처음으로 1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생산규모 기준 글로벌 의약품 CMO 1위 기업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팬데믹은 삼바를 국난을 극복한 '국민 기업'의 반열에 올려놨다. 2020년 이재용 회장이 직접 화이자 최고위 경영진과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백신 50만명분이 조기에 도입돼 팬데믹 극복에 큰 힘이 된 바 있다. 이 회장은 '모더나' 공동 설립자를 만나 코로나19 백신 공조를 약속하고 실제 공동생산까지 성사시켰다. 그렇게 매년 삼바의 조단위 수주행렬이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결정 이후 결국 바이오가 삼성물산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 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면서 "팬데믹 시기, 국가 안전에 기여한 공을 떠나서라도 세계 1등 사업을 만들어 국가 위상을 떨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기업가라면 경영권 지키는 데 죽을힘 다해야… 아니라면 배임"
IMF 이후 글로벌 행동주의펀드들은 국내 대기업들의 취약해진 기업 지배구조를 파고들었다. 특히 2003년 소버린이 SK를 뒤흔든 사태는 국내 기업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소버린으로부터 SK를 지켜내는 데 조단위를 뛰어넘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2015년 삼성물산 지분 7%를 쥐고 흔든 엘리엇의 공격에 삼성은 지금껏 홍역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후에도 엘리엇은 2017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던 현대모비스를 집중적으로 매집했고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려던 정의선 회장을 막아섰다. 기회를 놓친 현대차그룹은 지금껏 순환출자구조를 해소 못 하고 있다.
지난 17일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 부회장 최후진술을 통해 당시의 위기감을 엿볼 수 있다. 최 전 실장은 "양사 합병은 엘리엇이라는 헤지펀드의 개입으로 국민적 관심을 끌었고, 해외투기 자본을 저지하지 못하면 저희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전 기업이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고 전했다. 최 전실장은 또 "당시 합병을 추진한 임직원은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노력했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정치권과 사회에선 재계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에만 신경 썼지 그 이면의 위기는 제대로 보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송덕진 극동미래연구소장은 "기본적으로 경영자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건 배임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재용 회장이기 때문에 검찰이 승계 문제로 봤지만, 어떤 경영자라도 생존이 달린 문제에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송 소장은 "당시 삼성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전략과 추진이 옳은 거였냐고 묻는다면 경영학적 관점에선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