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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파할감 지역에서 힌두교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총기테러가 발생하자 인도는 테러의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했고, 파키스탄은 연관성을 부인하며 인도가 "정치적 이유로 테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의 만년설과 푸른 숲, 초원이 펼쳐진 카슈미르는 흔히 '동양의 스위스'라 불린다. '섬유의 보석'이라 불리는 캐시미어도 카슈미르에서 자라는 캐시미어 산양의 털에서 얻는다. 히말라야 만년설과 그 계곡 사이 초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이 곳엔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가 피를 뿌려왔다.
◇1947년 카슈미르 1차 전쟁
남아시아 북쪽,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 부분 남쪽에 위치한 고원지대 카슈미르는 1947년 8월 영국으로부터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당시 영국은 인도 내 소국들에게 주민들의 종교적 성향을 고려해 인도나 파키스탄에 합류할 것을 권고했다. 1941년 인구 조사 결과 카슈미르 인구의 77%는 무슬림이었지만 카슈미르의 마지막 군주이자 힌두교도였던 하리 싱은 파키스탄으로의 합류를 원하지 않았고,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카슈미르 내에서 무슬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파키스탄 북서 변경의 파슈툰족이 카슈미르를 침공하자 하리 싱은 인도령 가입 문서에 서명하며 인도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인도는 이 문서를 근거로 카슈미르가 합법적인 인도 영토라 주장하고, 파키스탄은 하리 싱이 인도 편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과 문서 조작 가능성 등을 주장하며 인도령 편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약 2년간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1949년 유엔(UN)의 중재로 제1차 카슈미르 전쟁이 끝났다. 카슈미르의 약 65% 가량인 중부와 남부는 인도가, 나머지 북서부 지역 약 35% 상당의 영토는 파키스탄이 점유하게 됐다.
◇1965년 제2차 카슈미르 전쟁
국제사회의 중재로 인도령 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로 나뉘었지만 이 지역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슈미르의 법적 지위가 정리되지 않았다.
양국의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1964년 12월 파키스탄이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을 공격했고, 인도가 이에 반격하며 제2차 카슈미르 전쟁이 발발했다. 이 전쟁은 카슈미르를 넘어 경계 지역으로도 확산됐고 지상군과 공군이 모두 투입되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전차전까지 벌어진 이 전쟁은 1966년 1월 소련의 중재로 끝났다.
◇1971년 제3차 카슈미르 전쟁(동파키스탄 전쟁)
제3차 카슈미르 전쟁은 동·서 파키스탄의 내분에서 시작됐다.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는 과정에서 소수민족인 벵골 힌두교도에 대한 파키스탄의 탄압이 이어졌고 인도는 이에 동파키스탄의 독립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인도의 개입에 파키스탄이 기선제 기습 공격을 감행하며 전쟁이 발발했는데 주요 전장은 카슈미르였다. 결국 양국은 1972년 심라협정에 서명하며 전쟁을 끝냈고, 오늘날의 실질통제선(LoC)이 확정됐다.
◇ 1999년 카르길 전쟁
제3차 카슈미르 전쟁 이후 약 28년간 전쟁에서 벗어난 카슈미르는 1999년 다시 무력 충돌에 휩싸인다. 1999년 5월 파키스탄군이 국경선을 넘어 인도 잠무 카슈미르의 카르길 지역을 불법으로 점령하면서 카르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카르길 전쟁은 양국이 '공식적'으로 핵무기 능력을 갖춘 이후 처음 발생한 충돌로 국제사회에는 그 위기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양국 모두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고, 인도군이 영토를 탈환한 후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전쟁은 마무리 됐다.
◇2016년 인도령 카슈미르 우리 지역 공격
2016년 9월,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무장단체 자이쉬-에-모하메드(JeM)가 인도령 카슈미르 우리 지역의 인도 군사기지를 습격해 군인 19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인도는 파키스탄이 이들의 테러를 묵인하거나 비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군은 사건 발생 열흘 뒤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에 침투, 국경지대에 은신한 테러조직을 공격해 테러범 수십 명을 사살하는 '정밀 타격'을 벌였다. 파키스탄은 자국 영토에 인도군 침입이 없었고 파키스탄군 역시 보복에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2019년 풀와마 공격
2019년 2월 인도 잠무 카슈미르 풀와마지역에선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인도 경찰들을 태운 차량 행렬을 겨냥한 이 폭탄 테러로 41명이 사망했고 자이쉬-에-모하메드(JeM)가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
인도는 이 테러의 실제 배후는 파키스탄이라 주장하며 공군 편대를 파견, 실질통제선(LoC)을 넘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바라코트 인근 테러리스트 캠프를 공습했다. 인도는 당시 공습으로 캠프 내 무장병력 200~30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파키스탄은 해당 지역은 텅 빈 언덕으로 캠프도, 인명피해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1971년 이후 인도 공군의 첫 LoC 침범에 반발한 파키스탄은 다음날날 공군 전투기를 동원해 인도령 카슈미르 영토를 침공, 공습을 가했다. 양국 공군 간 공중전이 벌어졌고 이 가운데 인도 조종사 한명이 생포되기도 했다. 파키스탄이 생포한 인도 조종사를 며칠 만에 석방하면서 양국 간 긴장도 완화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대규모 전면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양국 모두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핵무기가 확전의 심리적 억제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키스탄은 경제난에 처해 있고, 인도의 모디 총리 또한 총선 등 정치적 압박이 적은 상황이라 무리한 전쟁 확대는 부담이다. 다만 극우 지지층의 보복 요구와 카슈미르 개발 정책에 타격을 입은 모디 정부는 제한적 군사 대응을 통해 국면을 관리하려는 모습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한동안 국지적 충돌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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