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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며 정책화 절차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 등 36명이 발의한 이번 법안은 디지털 자산의 신뢰성과 금융 시스템의 혁신을 위한 제도 마련이 핵심이다.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이자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디지털자산 거래소, 핀테크 기업, 블록체인 기술업체들은 발행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탈중앙화 플랫폼을 개발하여 자체 테스트와 인프라 구축을 마친 곳도 등장했다. 선점 경쟁이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주요국 중앙은행장 회의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화폐 체계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와 중앙은행 간 긴밀한 조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시각차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최기재 멀티랩스퀘타 대표는 "시장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의 수요가 확인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급여를 디지털 자산으로 지급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테더(Tether) 등 디지털화폐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불법 다단계 조직들이 테더를 활용해 금융 규제를 우회하는 사례까지 확인되고 있다. 디지털화폐의 익명성과 즉시성이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장 이해도가 부족한 입법 과정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층 등 다양한 사용자들의 관점이 반영되지 않으면 법안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보다 더 높은 신뢰성과 편의성을 갖추지 못하면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 대표는 "일부 기업들은 자체 코인을 발행하며 핀테크 사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술력이나 제도적 안정성 없이 투자자를 유인하고 있다"며 "불법 다단계 조직이 이를 모방해 피해자가 양산되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인을 발행한 뒤 결제수단처럼 포장하는 현행 방식이 금융 신뢰를 크게 훼손할 것"이라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에 연동돼 안정성을 지닌 디지털자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해외 사례를 그대로 따르기보단, 국내 금융 환경과 소비자 특성, 기술 인프라 수준을 충분히 고려한 독자적 모델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와 민간 알트코인 시스템을 병행하며 중앙 통제와 탈중앙화 기술 혁신의 균형을 꾀하고 있지만, 한국은 시장 환경에 맞춘 독자적 방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물연계자산(RWA·Real World Asset) 기반 알트코인도 주목받고 있다. 법정화폐와 연동된 기존 가상자산과 달리, 실물 부동산, 예술품 등 자산에 연동돼 안정성을 높인 코인이다.
최 대표는 "국내에서는 아직 법·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도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며 "법 시행 이후에도 규정에 맞지 않는 코인들이 여전히 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법률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법 제정 과정에서도 가상자산 이해도가 부족한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현장성 없는 탁상공론식 입법이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실물자산 연계형 코인은 기술, 제도, 회계, 감정, 사후관리 등 종합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기존 가상자산 규제 틀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시장에서는 디지털자산 거래를 가장한 ‘현금 포인트’ 거래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일부 핀테크 기업들은 코인 발행 후 이를 현금 포인트처럼 중앙화된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탈중앙화 구조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제화만으로는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발행 경쟁을 넘어 블록체인 기반의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스테이블코인은 공허한 기술로 전락할 수 있다. 탈중앙화 구조와 투명한 자산관리 시스템이 병행되는 생태계가 필수적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도 기술력과 탈중앙화 기반을 갖춘 기관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양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인 최명렬 박사는 “스테이블코인과 알트코인은 기술적·정책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시점”이라며 “발행은 단순한 권한 부여가 아닌 탈중앙화 기반 플랫폼을 보유한 은행이나 업체 등 조건을 갖춘 주체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도 자체 개발된 블록체인 탈중앙화 플랫폼이 존재한다”며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운영 시스템 마련이 필수”라고 밝혔다.
KAIST 경영정보박사인 정창덕 나주과학대학교 총장은 “블록체인의 핵심은 투명성이고, 사용자 모두가 함께 발전하는 구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웹3.0 및 앱3.0 시대의 발전은 기존 핀테크 방식과 다르며, 반드시 탈중앙화된 플랫폼에서 거래가 이뤄져야만 미래지향적 설계가 가능하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 복제 모델이 아닌 기술 입찰을 통해 발행해야 하며, 법안 발의 방식처럼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최기재 대표이사는 “디지털자산의 세계화는 실물 기반 생태계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과 실물경제의 접점을 모색하는데 주력해야 미래지향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블록체인의 고유 철학인 탈중앙화를 현실 경제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지향적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연계자산 기반 토큰(RWA)을 활용한 결제 탈중앙화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자산의 가치를 실물 경제 시스템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이를 통해 글로벌 ESG 경영과 친환경 산업 생태계 구축을 실현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Web3.0 기술의 응용을 넘어, 블록체인 기술이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 여부는 기술력, 사용자 편의성, 투명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생태계 조성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