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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돌아온 양혜규 “블라인드부터 짚풀까지 다양한 소재 신작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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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5. 02. 10. 17:00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개인전 열고 35점 공개
양혜규
신작 ‘솔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설치작가 양혜규./제공=삼성미술관 리움
세계적 설치작가 양혜규(44)가 돌아왔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오는 12일부터 5월 10일까지 리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코끼리를 쏘다 상(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1936)와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1957)에서 영감을 받은 제목이다. 이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코끼리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순수한 자연을 의미하는 동시에 무너져버린 인간의 존엄성을 은유한다. 또한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신념을 지킬 수 있게 한 강력한 자연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 회복’을 위한 은유적 매개로 ‘코끼리’를 주목했지만, 정작 전시장에 코끼리는 없다. 다만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일 뿐이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 2001년 이후 발표한 대표작부터 신작까지 35점의 다양한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워낙에 방대한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어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한 전시다.

9일 기자들과 만난 양혜규는 “이 나이밖에 안 되는 작가가 이정도 얘길 해도 되나 싶었다.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매우 큰 얘길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이것이 만용이라면 만용이고 용기라면 용기다”고 말했다.


솔 르윗 뒤집기
솔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제공=삼성미술관 리움
◇블라인드·짚풀 등 다채로운 재료 사용한 신작들 ‘눈길’

기획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경사로 위에 설치된 양혜규의 신작이 눈길을 끈다. ‘솔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2015)이다. 미국 미니멀리즘 조각가 솔 르윗의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1986)을 23배 확장한 블라인드 설치작이다. 블라인드로 유명한 양혜규의 작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어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짚풀을 엮어 만든 ‘중간 유형’(2015)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간 유형’은 고대 마야의 피라미드 ‘엘 카스티요’, 인도네시아의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피어나는 튤립’이라 불리는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 툴판’을 참조한 구조물 3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 6점으로 구성돼 있다.


중간 유형(외발 사자춤_보로부두루에 부쳐)
중간 유형(외발 사자춤_보로부두루에 부쳐)./제공=삼성미술관 리움
‘중간 유형’ 근처 한 구석에는 작가의 초기작 23점을 모아놓은 ‘창고 피스’(2004)가 놓여 있다. ‘창고 피스’는 작가의 초기작들이 미술품 운송업체가 포장한 상태 그대로 네 개의 운반용 나무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보관할 곳이 없던 작품들을 전시장에라도 보관하려는 작가의 궁여지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양혜규는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세계적 작가라 부르지만 나 역시 보이지 않는 곳의 무명 작가였다”며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작품이란 먹여 살려야 할 가족 같은 존재다. 하지만 더 이상 작품을 끌고 다닐 수 없게 됐을 때 마지막으로 포장된 상태 그대로 작품을 전시한 뒤 폐기하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데 결국 이 작품은 독특한 작품을 사들이기로 유명한 도전적 성향의 한 독일 콜렉터에 의해 구입된다.

1994년 이후 해외에서 머물던 작가가 2010년 서울에 3개월 가량 체류하는 동안 제작한 ‘서울 근성’(2010)도 관람객을 웃음 짓게 만드는 재미난 작품이다. 반쯤은 이방인이 된 작가가 바라본 서울 사람들의 민낯이 잘 드러나 있다. 휴대폰 장식, 화장 도구, 장식용 조화, 욕실과 주방용품 등을 통해 바라본 서울의 해학적 풍경이다.

서울 근성
서울 근성./제공=삼성미술관 리움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이 사무실이나 집에서 쓰던 의자와 탁자를 대여해 설치한 ‘VIP 학생회’(2001/2015)는 전시장 한 켠에서 쉼터 역할을 한다. K팝 스타 ‘빅뱅’의 탑(최승현), 미술가 박찬경, 주한 미국·프랑스 대사 등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면 양혜규의 전형적인 블라인드 설치작 ‘성채’(2011)가 자리 잡고 있다. 186개의 블라인드로 이뤄진 ‘성채’는 6대의 무빙라이트가 물속을 유영하는 듯 신비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동작 감지 센서가 부착된 향 분사기 6대가 모닥불, 산안개, 바다 등의 향을 내뿜으며 다른 시공간을 연상시킨다.


VIP 학생회
VIP 학생회./제공=삼성미술관 리움
◇양혜규는 지난해 ‘세계 300위 이내 작가’로 뽑힌 주인공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양혜규는 2006년 자신의 첫 개인전을 인천의 한 폐가에서 열어 주목받았다.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외가집이었으나 8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채 방치된 공간을 청소하고 빨래걸이, 선풍기, 거울, 색종이 접기, 화초 등을 들여놓아 온기를 불어넣은 뒤 전시를 연 것이다. 미술관이나 화랑 같은 제도적 공간이 아닌 시 외곽의 버려진 집에서 열린 이 개인전은 신선한 화두를 던졌고 지금도 미술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후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과 본 전시에 참가해 공감각적인 블라인드 작업 등으로 세계적 호평을 받은 그는 뉴욕,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등지의 굵직한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4년에는 아트팩트넷이 선정한 ‘세계 300위 이내 작가’에 고 백남준, 김수자와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전시 관람료는 7000원.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50% 할인된다. (02)2014-6901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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