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7일(현지시간) 북한의 표준시 변경에 대해 “국수주의적 영합”이라면서 “이번 일은 정치적 목적으로 표준시를 바꿔버리는 긴 역사의 가장 최근 사례”라고 혹평했다.
포린폴리시는 그러면서 앞서 세계 각지의 독재정권들이 권력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시행했던 표준시 변경 사례를 언급했다.
중국의 ‘국부’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주석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신중국) 건국 이후 광대한 중국 영토 전체의 표준시를 베이징에 맞춘 일이 대표적이다.
또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 자치정부는 지난해 3월 러시아에 병합된 뒤 러시아 표준시로 시간대를 변경했다.
포린폴리시는 2007년 우고 차베스(1954∼2013)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뚜렷한 이유 없이 표준시를 30분 늦추면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해도 개의치 않겠다”고 강변한 점도 이런 사례로 지목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북한의 새 표준시는 지극히 기괴한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북한의 표준시 변경을 전했다.
WP 역시 2007년 베네수엘라가 표준시를 바꾼 것이 북한의 사례와 가장 유사하다면서 “차베스 시절 베네수엘라는 시간대뿐 아니라 국가명, 국기, 문장도 바꿨다”면서 독재정권들 사이의 공통점을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스(FT)도 북한이 평양시간이라는 자체 시간대를 만들어냈다고 보도했다.
FT는 북한이 서력(西曆) 대신 김일성(1912∼1994) 주석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삼는 주체력(主體曆)을 1997년 도입해 세계적으로 ‘나홀로 달력’을 쓰는 데 이어 표준시까지 바꿨다고 소개했다.
NYT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항일 활동과 주체사상을 강조하고 머리모양과 담배 피우는 손 모습까지 따라 하면서 정권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표준시 변경의 이유로 ‘사악한 일본 제국주의자에 빼앗긴 표준시간을 되찾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시사주간지 뉴욕매거진은 북한 발표문의 구절을 따와서 “북한이 사악한 제국주의자가 아닌 인민들을 위해 훨씬 우월한 표준시를 만들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이번 ‘애국적’인 표준시 변경이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해주거나, 김정은의 간부 처형 욕구를 치료해줄 것 같지는 않다”고 이 잡지는 꼬집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새 시간대 설정을 통해 김정은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코드와 국가의 위엄을 다시금 강조할 수 있다”면서 “북한 정권에 있어 표준시 변경으로 생기는 어려움이나 불편함은 내부 선전적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지린대의 왕성 국제정치학 교수는 북한의 표준시 변경이 북중 무역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과의 시차가 기존의 1시간에서 30분으로 단축돼 북한이 좀 더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고 NYT는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