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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창업 내조한 故 강태영 여사 별세… 재계 조문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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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기자

승인 : 2016. 08. 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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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질문에 답하는 김승연 회장
아시아투데이 정재훈 기자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1일 오후 모친인 강태영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모친 고 강태영 여사의 빈소에 11일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11일 김 회장은 오후 12시부터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모친의 빈소를 지키다 오후 4시 다시 자택으로 돌아갔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오후 3시쯤 빈소로 찾아왔다. 형제가 빈소를 번갈아 지키는 셈이다.

돌아갈 때 심정이 어떻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회장은 침통한 표정으로 “슬픕니다”라고 답했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은 조모상을 맞아 브라질에서 귀국해 12일 오후 3시 빈소에 도착할 예정이다.

[포토]김승연 회장 모친 빈소 조문온 박용만 회장
아시아투데이 정재훈 기자 =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11일 오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모친인 故 강태영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빈 외부 재계 인사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박 회장의 경우 SK그룹 故 노순애 여사의 빈소에도 가장 먼저 방문한 바 있다.

박 회장은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됐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뵀고 영정 사진을 뵈니 옛 모습 그대로시다. 어렸을 때 친구 어머니시고 고우신 모습이셨다. 수학여행 때 간식도 챙겨주고 하셨다”고 회고 했다.

[포토]조문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아시아투데이 정재훈 기자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11일 오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모친인 故 강태영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현 회장은 기자들이 고인과 어떻게 알고 지냈는지 등의 질문에 아무 대답 없이 조문을 마쳤다. 이어 오후 3시30분쯤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잠시 후 오후 3시45분경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조문했다.

정치권에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삼당 원내 대표중 가장 먼저 빈소를 방문했으며 서병수 부산시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등이 조문을 했다.

강태영 여사님
故 강태영 여사. /제공 = 한화그룹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 회장의 모친 故 강 여사는 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부인으로 슬하에 김승연 회장과 김호연 빙그레 회장, 김영혜 전 제일화재 이사회 의장을 뒀다.

강 여사는 1927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수원여고를 졸업했다. 양가 어른들의 소개로 김 창업주와 인연이 돼 광복 직후인 1946년 결혼식을 올렸다. 유교적 성품을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로, 조용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강단 있는 생활인으로 알려졌다. 강 여사는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에만 신경을 썼다. 김 창업주에게 강 여사는 문화사업이나 육영사업 같은 사회 활동에 대해서는 조언자이자 조력자이기도 했다.

60~70년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의 회장으로 김 창업주는 미국 등 각국 유력 인사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처했다. 가회동 자택에는 외국 손님들도 자주 방문했는데, 당시 한국 전통의 가정에서 정성스런 식사를 대접받은 외빈들을 통해 미국 외교가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였다.

특히 1971년 미국 레어드 국방부 장관이 방한했을 때 강태영 여사는 자택에서 정성껏 손님을 맞이했고, 국방장관의 부인이던 바바라 여사는 전형적인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는 일화가 당시 신문지상에 소개되기도 했다.

후학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강 여사는 김 창업주의 고향인 충남 천안에 북일고등학교를 세울 때에도 의견을 펼쳐 적극 반영했다. 김 창업주가 학교 부지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을 때 강 여사가 공장 부지로 사두었던 천안시 신부동 땅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1976년 3월, 신부동 국사봉 밑에 천안북일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1981년 7월 23일, 배우자인 김 창업주가 59세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강 여사는 남편의 뜻을 살리기 위한 추모사업에 몰두했다. 사업의 일환으로 1983년 2월,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에 ‘성디도 성전’을 축성 봉헌했다. ‘성디도’는 김 창업주의 성공회 세례명이기도 하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제대로 된 생일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 김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03년 어머니가 희수(喜壽)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다”고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에게 어머니 강태영 여사는 삶의 스승이자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강 여사는 그 무엇보다 자녀를 기르고 가르치는 의무를 소중히 여겼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성장시킴으로써 자식교육과 당신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1981년 김 창업주가 갑작스레 별세하고 김 회장이 그룹 경영을 승계하자 젊은 CEO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는 우려 섞인 시각들도 있었으나, 강 여사는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장남인 김 회장을 믿고 의지했다.

강 여사의 기도와 바램처럼 김 회장의 한화그룹은 제2의 창업을 실현했고, 국내 10대그룹, 포춘지 선정 글로벌 기업 277위로 성장했다. 김 회장에 대해 어린 나이에 회사 일을 맡긴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사업능력과 추진력은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강 여사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 13일 오전 7시, 장지는 공주시 정안면 선영이다.
최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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