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한화家 고 강태영 여사 빈소에 정·재계 조문 이어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160812010006492

글자크기

닫기

최원영 기자

승인 : 2016. 08. 12. 03:34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김승연 회장 빈소
아시아투데이 정재훈 기자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1일 오후 모친인 강태영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모친 강태영 여사 빈소에 11일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고 강태영 여사는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부인으로 슬하에 김승연 회장과 김호연 빙그레 회장, 김영혜 전 제일화재 이사회 의장을 뒀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이날 김승연 회장은 오전 종일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이했다. 김 회장의 세 아들은 브라질에서 귀국해 12일 오후 빈소에 도착할 예정이다.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승마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한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팀장을 응원하기 위해 브라질에 체류 중이었다.

조문은 이날 오후부터 시작됐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당 원내대표 중 가장 먼저 빈소를 방문했으며 박주선 국회 부의장, 서병수 부산시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등이 조문을 했다. 또 남경필 경기도지사,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박진 새누리당 전 의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김근상·김성수 성공회 주교도 빈소를 방문, 고인에 대한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

[포토]조문온 박용만 회장
아시아투데이 정재훈 기자 =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11일 오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모친인 故 강태영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박 회장은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됐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뵀고 영정 사진을 뵈니 옛 모습 그대로시다. 어렸을 때 친구 어머니시고 고우신 모습이셨다. 수학여행 때 간식도 챙겨주고 하셨다”고 회고 했다.

김승연 회장은 4시간여 동안 조문객을 맞은 뒤 오후 4시께 장례식장을 떠나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빈소로 돌아왔다. 김 회장은 최근 강 여사의 건강이 악화되자 임종 때까지 지키면서 피로가 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 회장의 모친 故 강 여사는 그룹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부인으로 슬하에 김승연 회장과 김호연 빙그레 회장, 김영혜 전 제일화재 이사회 의장을 뒀다.

강 여사는 1927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수원여고를 졸업했다. 양가 어른들의 소개로 김 창업주와 인연이 돼 광복 직후인 1946년 결혼식을 올렸다. 유교적 성품을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로, 조용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강단 있는 생활인으로 알려졌다. 강 여사는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에만 신경을 썼다. 김 창업주에게 강 여사는 문화사업이나 육영사업 같은 사회 활동에 대해서는 조언자이자 조력자이기도 했다.

60~70년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대한민국 대표기업의 회장으로 김 창업주는 미국 등 각국 유력 인사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도 자처했다. 가회동 자택에는 외국 손님들도 자주 방문했는데, 당시 한국 전통의 가정에서 정성스런 식사를 대접받은 외빈들을 통해 미국 외교가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였다.

특히 1971년 미국 레어드 국방부 장관이 방한했을 때 강태영 여사는 자택에서 정성껏 손님을 맞이했고, 국방장관의 부인이던 바바라 여사는 전형적인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는 일화가 당시 신문지상에 소개되기도 했다.

후학양성에 관심이 많았던 강 여사는 김 창업주의 고향인 충남 천안에 북일고등학교를 세울 때에도 의견을 펼쳐 적극 반영했다. 김 창업주가 학교 부지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을 때 강 여사가 공장 부지로 사두었던 천안시 신부동 땅을 둘러보자고 제안했다. 1976년 3월, 신부동 국사봉 밑에 천안북일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1981년 7월 23일, 배우자인 김 창업주가 59세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강 여사는 남편의 뜻을 살리기 위한 추모사업에 몰두했다. 사업의 일환으로 1983년 2월,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에 ‘성디도 성전’을 축성 봉헌했다. ‘성디도’는 김 창업주의 성공회 세례명이기도 하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제대로 된 생일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 김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003년 어머니가 희수(喜壽)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다”고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에게 어머니 강태영 여사는 삶의 스승이자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강 여사는 그 무엇보다 자녀를 기르고 가르치는 의무를 소중히 여겼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성장시킴으로써 자식교육과 당신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1981년 김 창업주가 갑작스레 별세하고 김 회장이 그룹 경영을 승계하자 젊은 CEO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는 우려 섞인 시각들도 있었으나, 강 여사는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장남인 김 회장을 믿고 의지했다.

강 여사의 기도와 바램처럼 김 회장의 한화그룹은 제2의 창업을 실현했고, 국내 10대그룹, 포춘지 선정 글로벌 기업 277위로 성장했다. 김 회장에 대해 어린 나이에 회사 일을 맡긴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사업능력과 추진력은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했다.

강 여사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 13일 오전 7시, 장지는 공주시 정안면 선영이다.
최원영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