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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봐도 진실의 신빙성에는 결정적 하자가 있다. 도널드 경이 6월 26일 보낸 전문에서 사망자 수를 2700~3400명으로 추산한다고 보고한 것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1만여 명 희생 소문을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희생자가 1만여 명이라고 보고한 전문을 보낸 시점이 사태 직후인 6월 5일인 점도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5일이라면 당시 사태를 폭란(暴亂)으로 규정한 중국 입장에서도 정신이 없는 상태일 수밖에 없다. 1만여 명을 사살했다면 아무리 희생자들이 폭도들이더라도 애도의 마음도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무원이 회의를 개최, 즉각 1만여 명 사망을 확인하는 것은 가능할 수가 없다. 게다가 참석자 14명 중 한 명이 도널드 경에게 정보를 흘렸다고 하는 것도 말이 좀 안 된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영국의 간첩이거나 제 정신이 아닌 최고위층이라고 단언해도 괜찮다. 아무래도 전문의 존재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시 국무원 회의 참석 대상자가 14명이 아닌 13명이었다는 사실까지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결정적인 것은 당시 사태의 유족들이 희생자들을 2500~3000명으로 추산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당시 사태를 주도한 왕단(王丹·48), 우얼카이시(吾爾開希·49) 등 학생 지도자들이 희생자 수를 비슷하게 보고 있는 것까지 더할 경우 1만여 명 사망설은 더욱 신빙성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아무리 서방세계의 기밀 해제된 문건들이 과거사의 숨겨진 이면을 잘 담고 있다고 해도 모두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