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Advertisements

경기문화재연구원, 북한산성 행궁지 보존·정비 첫 발...학술심포지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180710010005964

글자크기

닫기

이대희 기자

승인 : 2018. 07. 11. 07:50

구글 검색 선호 출처 추가 Google 검색에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s

Advertisements

13일 고양시 일산동구청에서 진행
복원고증연구, 수목정비 방안, GIS 분석 연구 등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서울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북한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산성의 가치를 새롭게 하기 위해 13일 고양시 일산 동구청에서 ‘북한산성 행궁지의 보존·정비와 활용방안 탐색’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11일 경기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심포지엄은 사적 제479호 북한산성 행궁지의 올바른 보존·정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기획됐다. 심포지엄에서는 보존정비 방향에 대한 기조강연과 가상복원도를 중심으로 한 복원고증연구, 수목정비 방안, GIS 분석 연구 등이 다뤄질 예정이다.

북한산성 행궁은 산성 내에 지은 궁터로 태고사(太古寺)에서 대성문(大成門)으로 오르는 등산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드러나 있는 건축물은 현존하지 않으며 약 9900㎡에 이르는 행궁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까지 건물이 보존돼 있었으나 언제 훼손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행히 일제강점기에 찍힌 사진이 남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궁(離宮)이라고도 불리는 행궁은 임금의 임시 숙소로, 임금이 거처하는 궁의 격에 맞추어 지은 관아 건물에 속한다. 전시(戰時)에 임시 피난처 및 지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짓기도 하지만 피서(避暑)나 피한(避寒) 또는 요양을 위해 짓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특히 고려 시대에 많은 이궁이 지어졌고, 조선 시대에는 수원 화성(華城)을 비롯해 여러 군데에 행궁이 있었다.

북한산성 행궁은 산성 축성 1년 후인 1712년(숙종 38년)에 완공됐다. 산성은 도성 방어뿐만 아니라 유사시 왕실을 비롯한 도성민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조선 숙종 37년 5월 북한산성 축성을 감독하던 김우항이 산성 내에 행궁을 지어야 한다고 진청(陳請)해 다음 해에 완공했다. 북한산의 험한 산세를 감안해 영건청(營建廳)을 두고 호조판서 김수항과 공조판서 이언강을 주관 당상(堂上)으로 정해 공사를 진행했다. 목재는 산성 밖 삼천동에서 가져다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의 행궁은 내전(內殿)과 외전(外殿)으로 이루어져 총 규모가 124칸에 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내전은 정전 28칸과 좌우 각 방·청(廳)·대문· 수자칸(水刺間) 등 부속 건물 25칸이며, 외전은 정전 28칸과 외행각방(外行閣房)·누·청·곳간·대문 등 부속건물 33칸으로 이루어졌다.

이 같은 규모의 행궁이 1915년 산사태로 매몰돼 사라졌으나 2012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체계적인 정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산성문화사업팀 관계자는 “이번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북한산성 행궁지 보존정비 방향과 향후 정비된 행궁지 활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이 도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대희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