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물 갔으나 한창 전성기 때는 미국에도 영향력을 미쳤던 홍콩 영화계는 조폭들의 완전 독무대라고 해도 좋다. 신분세탁을 한 조폭들이 깊숙히 침투, 제작은 말할 것도 없고 출연배우들의 캐스팅까지 좌주우지하니 이렇게 단언해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 예외없는 법칙 없듯 조폭 아닌 영화인도 나름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인물을 꼽을 수도 있다. 전설의 액션 스타 리샤오룽(李小龍)과 청룽(成龍·64)을 키운 홍콩 영화계의 대부인 저우원화이(鄒文懷) 골든하베스트 설립자가 바로 이 특별한 주인공이 아닌가 싶다. 조폭과 연루됐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는 많지 않은 홍콩 영화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저우원화이
0
별세한 홍콩 영화계의 대부 저우원화이. 조폭 아닌 영화인으로 유명했다./제공=밍바오.
이런 그가 2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밍바오(明報)를 비롯한 홍콩 언론의 3일 보도에 따르면 원래 그는 홍콩 영화계의 전설로 꼽히는 제작사 쇼바라더스에서 성장한 인물로 고작 40대의 나이에 사장에까지 올랐다. 그로서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는 그러나 1970년 과감히 쇼브라더스를 나와 골든하베스트를 설립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 모험은 성공이었다. 미국에서 무술인 겸 조연배우로 활약하던 리샤오룽을 발굴, ‘당산대형’을 비롯해 ‘맹룡과강’, ‘용쟁호투’ 등의 세계적 히트작을 잇따라 제작. 기염을 토한 것. 그는 그러나 리샤오룽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큰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 위기는 리샤오룽보다는 못해도 지금껏 스타로 손꼽히는 청룽을 발굴하면서 극복됐다. 이후 그는 1994년 회사를 홍콩 증시에 상장시키는 뛰어난 경영인으로서의 수단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홍콩 주권의 중국 반환과 아시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그의 회사는 내리막을 걷게 됐다. 급기야 중국 자본에 인수되는 비운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홍콩 영화계의 전설인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 아닌가 싶다. 생전에 코미디와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 600편 이상을 제작한 사실만 상기해도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