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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텐더도 해봤고 옷장사도 해봤고, 공장 용광로에서도 일했고 학생들도 가르쳤다. 그저 몇 번으로 그친 일이나 이름만 올린 일 빼고, 대략 25개의 직업을 거쳤다. 때문에 ‘구르는 돌’(롤링 스톤)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그는 다름 아닌 고학찬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다.
‘문화예술의 본진’으로 일컬어지는 예술의전당에서 사상 최초로 연임 기록을 세우며 2013년 3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장장 6년 간 수장을 지낸 고 전 사장은 ‘나의 미완성 자서전’이란 부제가 붙은 ‘구르는 돌’에서 이같이 말한다.
“실제로 나는 늘 구르는 돌이었다. 거친 흙바닥도 굴러봤고 아찔한 낭떠러지도 굴러봤고 때로는 짠 내 품은 바닷물에 굴러도 봤다가 아찔하게 흐드러진 꽃밭을 굴러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위대한 철학가인 양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을 생각은 없다. 그저 거칠게 굴러온 삶이었다는 것, 그런 내 삶이 싫지 않다는 것, 후회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굴러가는 중이라는 것, 그것뿐이다.”(8쪽)
책은 제주도 용두암 인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가족과 헤어져 살던 자신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동네에서 제일 노래를 잘했던 어머니를 닮아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던 이야기, 강대국의 전쟁에 이용되고 4.3 사건의 아픔이 있는 제주에 관한 기억 등이 펼쳐진다.
이후 17년간의 제주 생활을 접고 서울로 상경한 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66학번으로 입학하게 된 사연,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충남 천안의 성불사에 숨어들어 도롱뇽, 노스님과 친구가 된 이야기, 동양방송(TBC) PD가 되어 여러 프로그램을 히트시킨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5.18 광주항쟁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방송대본이 검열을 거쳐야 되던 그때, 그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 LA의 바에서 알코올중독자를 상대로 칵테일을 만들고 뉴욕 롱아일랜드 길거리에서 도매상에서 떼어온 모자를 팔며 겼었던 이야기, 뉴욕 한미 방송을 최초로 진행하게 된 사연 등 15년간 미국생활에서의 인생 역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미국에서 직업도 나이도 다양한 이들과 친구로 지내며 그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접게 됐다고 돌아봤다.
“제주도 속담에 ‘애기업개 말도 들어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애기업개의 말도 잘 들어봐야 한다’, 즉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람의 말도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큰 의미 없이 들었던 이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살면서 나 스스로 무수히 쌓고 부수고 하는 보이지 않는 벽들. 나는 이제 그런 벽을 아예 쌓지 않는 사람이 됐다. 행여 이런 마음을 잠시 망각하고 벽돌 하나라도 집어 들 기미를 보이면 미국에서 힘든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이 내게 매우 실망할 것이다. 특히 중국 레스토랑 바텐더로 출근하던 첫날 어리바리하게 헤매던 나를 도와준 그 알코올 중독자는 또 술에 취해 벌게진 눈으로 이렇게 말하겠지. ‘헤이! 자니, 쓸데없는 짓 말고 얼른 칵테일이나 한 잔 맛있게 만들어 봐. 아니 그거 말고 이거랑 저거랑 썩으라니까!’”(166~167쪽)
책에는 엘리트 코스만 밟거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온 이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만의 삶에 대한 혜안이 담겼다.
“생각해보며 늘 외로운 삶이었다. 늘 이방인이었고 늘 낯선 사람이었으며 늘 왕따였다”는 그는 이제 ‘비긴 어게인’(Begin Again), 즉 다시 시작하려 한다. 영화 제목이자 그의 첫 영문 서예 작품이기도 한 ‘비긴 어게인’은 그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이다.
“지금 이 자리가 끝나면 나는 또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다. 나는 늘 길거리에서 뭔가를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하나를 끝내고 또 하나를 시작하는 일에 아무런 부담도 없다. 오직 새롭고 낯선 길에 대한 설렘만이 있을 뿐이다.”(21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