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둥실 둥실, 고추잠자리 뱅뱅 뱅뱅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늦더위 심술에도 계절은 이미 가을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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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무렵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늦더위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때부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게 하는 가을의 전령사들이 더 뚜렷이 감지된다. 입추 어간부터 들리기 시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왠지 더 자주, 그리고 더 처량하게 들린다. 뿐만 아니라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 낮에는 고슬고슬한 바람이 불어 온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있고, 그 아래 고추잠자리들이 한가롭게 날아 다닌다. 지상에는 빨간 고추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가을 길목의 전형적인 풍광이다. 옛말에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처서 어간에는 무더운 여름이 가고 상쾌한 가을이 오는 징조다.
◇뭉게구름 둥~실 둥~실, 고추잠자리 뱅~뱅 뱅~뱅
그렇다고 무더위가 곱게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 무렵 노염(老炎), 잔서(殘暑)라 부르는 늦더위가 만만치 않다. 처서는 늦더위로 가을의 교절(交節)적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아침과 저녁의 선선한 바람에 무더위가 끝났다고 안도하는 마음에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듯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초봄에 추위가 쉽게 떠나지 않고 꽃샘추위로 봄을 시샘하듯, 초가을에는 더위가 쉽게 떠나지 않고 늦더위로 가을을 시샘한다. 천체(天體)의 운행은 매우 순조롭고 질서 정연하지만 기상의 변화는 뒤죽박죽인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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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날씨와는 달리 천체의 운행에는 차질이 없어, 처서가 끝날 무렵부터 태양의 고도가 상당히 낮아져 햇볕이 누그러지고 일조량이 적어진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속담처럼 풀들도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처서 어간에 마지막으로 논두렁이나 밭두렁의 잡초를 베고 조상의 묘소를 벌초했다. 이 무렵부터 나뭇잎 변색이 시작되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한들거리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처량해진다. 천지(天地)에는 까닭 모를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우수와 비애의 가을 느낌이 묻어난다.
처서 어간은 옥수수 수확 철이다. 쪄먹을 것은 씨알이 완전히 익기 전인 7월 하순부터 수확한다. 곡식이나 사료용으로 쓸 것은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 어간에 수확한다. 처서는 복숭아의 제철이기도 하다. ‘처서 복숭아, 백로 포도’라는 말이 있다. 처서 무렵의 복숭아는 껍질이 더 잘 벗겨진다. 단 즙이 많은 수밀도(水蜜桃)는 여름의 마지막 길목인 처서 때가 제철로 맛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