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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소령은 1949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국군 제6사단에서 복무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제6사단은 춘천과 홍천지구에서 북한군 제2사단과 제12사단의 남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또 횡성과 충주로 이동하며 지연전을 전개해 북한군의 병력과 장비에 손실을 입힘으로써 수도권 포위작전에 큰 차질을 빚게 했다.
1950년 9월 16일부터 반격 작전으로 전환한 국군 제6사단은 충주와 원주를 거쳐 춘천을 탈환하고 10월 26일 한·중 국경선에 도달해 초산을 점령한 후 압록강변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김병호 소령은 중국군의 제1차 공세와 제2차 공세로 인해 1951년 1월 7일 안성-장호원 선까지 후퇴하던 중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김병호 육군소령의 살신보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이름을 새겨 추모하고 있으며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제1묘역에 안장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다.
이승우 국립대전현충원장은 유가족들에게 이달의 현충인물 선정 취지 등을 설명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