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죄기 정책에 계약 파기건 늘어나
금융당국, 내주 추가 대책안 발표
"6%대 이상 증가해도 용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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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B씨는 기존에 거주하던 오피스텔 계약만료가 다가오자 집주인의 월세 증액 통보를 받았다. 이에 전세대출을 받아 이사를 계획 중이다. 하지만 전세대출을 받으려고 보니 일부 은행은 점포별 총량 규제를 하고 있어 대출을 받을 수 없었고, 대출 가능한 은행을 찾는 것이 근심거리다.
14일 금융당국은 대출 실수요자의 어려움을 고려해 4분기 중 취급되는 전세대출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 6% 관리 한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최근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서 전세대출 등 주택관련 실수요 대출이 늘었는데, 이것마저 규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 또한 “서민 실수요자 대상 전세대출과 잔금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주문에, 금융당국 또한 가계대출 관리 방안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투자자 교육플랫폼 ‘알투플러스’ 오픈 기념회 축사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전세대출 증가로 (가계대출 잔액이) 6%대 이상으로 증가하더라도 용인하려고 한다”면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6%대로 관리하려면, 4분기 중 실수요 대출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질 수 있어 (전세대출) 부분은 제외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권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전세자금 대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유자금이 있는데도 최대한도로 전세대출을 받아 주식이나 코인 등에 투자하는 ‘빚투’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전세자금 대출 등 실수요 대출 비중이 여전히 높은 추세라 당국은 전세자금 대출까진 규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세값 상승추세에 전세자금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면, ‘전세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9월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701조5680억원 중 49.4%가 전세 자금대출으로, 실수요 대출이 절반가량에 달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9월 중 은행권 가계대출 동향’을 보면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전월 대비 6조5000억원 늘면서 여전히 대출수요가 거세다. 이 중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관련 대출은 87%에 달했다.
현재 당국의 가계대출 제한 기조에 시중은행의 전세대출도 중단 추세다. 농협은행은 지난 8월부터 전세대출을 포함한 모든 가계 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전세자금 대출, 입주 잔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하나은행 또한 오는 15일부터 임대차 계약 갱신 시 전세대출 한도를 줄일 예정이다.
은행권 대출 규제에 실수요자의 전셋값과 주택 매매 잔금 마련 또한 불투명해졌다. 한 시중은행 점포 직원 또한 “은행권의 대출 규제 상황은 하루하루 달라지고 있다”면서 “현재는 대출이 가능할지라도 전세대출 서류 심사 과정에서 당국의 규제나 은행 자체의 대출 기조 변화로, 대출 지급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주택 관련 대출과 직결되는 부동산 업계도 은행권 대출규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단지 내 부동산 중개업체 대표는 “최근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매매나 전세 계약건의 중도 파기건이 늘었다”면서 “10월부터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는데 주택 관련 대출 규제가 강해지고 있어 부동산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실수요 대출을 무작정 막을 수 없는 상태라, 금융당국 또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률 6%대 목표치 중 전세대출은 제외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주 발표되는 가계대출 추가 규제 방안에는 가계대출을 ‘조임’과 동시에, 전세대출 등 실수요자 관련 대출은 ‘푸는’ 정책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