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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에 따르면 고인은 미국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3∼4일 전 건강이 위중하게 악화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진 뒤 세상을 떠났다.
1923년에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안남도 삼화보통학교와 서울 이화고녀(현 이화여고)를 졸업했다. 학업을 마치고 만주 용정에서 유치원 보모 생활을 잠시 한 뒤 결혼 후 연길로 거처를 옮겼고, 1945년 광복 이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온 지 2년 만인 1947년 24세의 나이에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해 합격하며 가수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데뷔곡이었던 '고향초'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6.25 전쟁 중에는 국군 위문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종전 후에는 가수 안다성과 함께 발표한 '청실홍실'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카츄사의 노래' '여옥의 노래' '하늘의 황금 마차' 등을 발표했다.
또한 '나 하나의 사랑'도 히트시켰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가사를 모티브로 삼아 영화와 소설이 만들어지며 고인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그는 1971년 미국으로 떠나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에서 생활했다. 2006년 KBS1 '가요무대' 천 회 특집 출연을 위해 잠시 한국을 찾기도 했다. 2014년에는 남이섬 노래박물관 앞에 대표곡 '나 하나의 사랑' 노래비도 세워졌다.
고인이 17년 전 출연한 '가요무대' 제작진은 오는 4월 그의 100번째 생일을 앞두고 '송민도 100세 특집'을 논의 중이었으나 갑작스러운 별세로 추모 무대 형식으로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