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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옷 소리는 식용유통, 갈대 소리는 낙엽”…넥슨, 게임에 숨을 불어넣는 사운드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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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게임담당 기자

승인 : 2025. 04. 09. 12:03

사운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게임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뭔가 느낌이 다른데?” 그 ‘느낌’은 어쩌면, 빈 컵라면 용기에서 시작된 소리일지도 모른다.

게임 속 작은 소리는 때때로 유저가 끝내 몰입을 놓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결정적 요소다.

눈밭을 밟는 감촉, 뼈가 부러지는 듯한 타격음, 낡은 갑옷이 부딪칠 때의 찌걱임. 이 모든 것은 갑자기 생긴 효과음이 아니다. 누군가가 상상하고 실험하고, 현실의 소리로부터 ‘조합’해낸 결과다.

넥슨에서 ‘폴리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안용재는 바로 그 작업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물풍선 아이템이 터지는 사운드부터 철갑옷이 끼익거리는 소리까지, 유저가 무심코 지나치는 대부분의 효과음을 그의 손이 거쳐간다. 영화로 시작한 커리어는 게임으로 전환됐고, 그는 지금 ‘사운드로 연출하는 감정’의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 영화 스튜디오에서 게임 사운드로…새로운 사운드를 찾아 떠난 여정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 /넥슨
지난 7일 넥슨 태그에 공개된 ‘폴리 아티스트’ 안용재는 처음부터 게임 업계에 있었던 건 아니다. 영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영화 스튜디오에서 마이크를 들고 촬영장을 누볐다.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현장 녹음을 하며, 눈을 밟는 소리는 굵은 소금으로, 칼이 빠지는 소리는 바이올린 활과 쇠로 만들어냈다. 이 시절 그는 깨달았다. 중요한 건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던 소리를 ‘보이게’ 하는 일이란 걸.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영화 산업이 특정 장르로 쏠리면서, 사운드도 똑같은 느낌을 반복해 찍어내야만 했다. '진짜 다른 소리'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게임이라는 전혀 다른 무대로 넘어간다. 마침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던 넥슨은 그에게 딱 맞는 자리였다.

◆ 상상력의 영역, 게임 사운드…“여기는 우주입니다”라고 말하면 우주가 된다
지난 2018년, 동물원에서 폴리 사운드를 녹음하는 장면 /넥슨
입사 후 처음 마주한 게임 사운드는 놀라웠다. 안용재는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대사를 떠올렸다고 했다. 

“라디오에서는 내레이터가 ‘여기는 우주입니다’라고 하면 그냥 우주 공간이 되는 거예요.”

그 말처럼 게임 속 소리는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상상의 해석’이었다.

소리는 단순한 효과가 아니라 또 하나의 연출이자 서사다. 캐릭터가 슬퍼하는 장면에서 과장된 소음은 몰입을 망치고, 조선 시대 배경에 전자음이 들어가면 전체 분위기를 깨버린다. 

안용재는 이 개연성을 지키기 위해 집착에 가까운 노력을 들인다. 컵라면 용기를 구기다 ‘타조알 깨지는 소리’를 얻고, 대형 식용유통으로 갑옷 소리를 만들며, 갈대 소리는 낙엽을 쓸어모아 녹음했다.

하루하루의 일상은 사운드 채집의 연속이다. 백화점에서 운동화를 하나하나 신어보고, 회사 분리수거함에서 버려진 사무용품을 시험해보고,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귀를 연다. 

그는 말한다. “좋은 폴리 사운드는 유저들이 귀를 의심하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소리입니다.”

◆ “사운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캐릭터다”
안용재 폴리 아티스트 /넥슨
안용재는 지금까지 넥슨의 수십 개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다. 캐주얼 게임에선 귀여운 오브젝트 효과음을 위해 도구를 따로 만들었고, 전투 게임에서는 발소리, 무기 마찰음, 환경음 등을 세세하게 조정했다. 

아무리 시도해도 마음에 드는 소리가 안 나올 땐, 100개를 만들어도 결국 쓸 수 있는 건 10개가 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사운드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작은 소리 하나가 게임 전체의 완성도를 바꾼다”는 믿음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그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는 “AI가 특정 소리를 빠르게 찾거나 조합하는 데는 분명 도움 되겠지만, 창의적인 ‘감정 해석’만큼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폴리 사운드를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 표현하는 이유다.
김동욱 게임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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