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조직 갖추고 '현지 전략' 정교화
제철소 투자… 트럼프도 "아름다워"
현대차그룹 불확실성 극복의지 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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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의선 회장은 미국서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선 정부와 학계, 언론을 가리지 않고 각종 지정학 리스크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고 끝내 국내 가장 견고한 대외 리스크 전담 조직을 꾸렸다. 첫 외국계 CEO에,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성 김 외교관을 대외·PR담당 사장으로 앉히기도 했다.
이제 막 시작 된 트럼피즘 앞에서 얼마나 잘 방비 했는 지는 향후 실적으로 증명 될 전망이다.
◇"제철소도 짓겠다" 통큰 베팅… 트럼프 "관세 지불 필요 없다"
"진정 위대한 기업인 현대와 함께하게 돼 큰 영광이다. 현대는 대단한 기업이다."
지난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은 현대차그룹 총수 정의선 회장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국내 정치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 여기에 막대한 관세와 불확실성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자 국내 기업들은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미국을 대하는 정 회장은 침착했다. 과감한 미국 추가 투자 계획을 세계 어느 기업보다 신속하게 확정하며 미국 내 든든한 우군 확보에 성공했다.
트럼프 2기를 맞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정 회장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아름다운 발표"라는 찬사를 들으며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인 210억 달러(약 31조원) 투입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정 회장은 자동차뿐 아니라 자동차 핵심 재료인 강판을 만드는 제철소까지 현지에 건설해 철강과 자동차 부품 공급망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공급망 확보가 절실한 미국 시장에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차그룹은 역대급 대미 투자 발표 이틀 후인 3월 26일에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을 열었다. HMGMA는 지난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10월 착공했다. 바이든 정부의 현지 투자 활성화 정책에 부응한 투자였지만 결국 관세를 무기로 꺼내든 트럼프 행정부에도 통하는 카드가 된 셈이다.
이날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날이기도 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이번 투자 계획도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오랜 기간 준비된 결과물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미국 내 일자리 8500개를 창출하기 위해 조지아주 서배너에 투자하기로 한 결정은 2019년 서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현대·기아 작년 최대 실적…'미국통' 카드 통했다
정 회장이 미국 시장 확장을 위해 통상 전문가, 미국 시장 전문가들을 중용해 온 것도 필살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 시장 확장을 위해 마케팅 전문가 호세 무뇨스 사장을 일찌감치 영입한 데 이어 '미국통'외교관 김일범 부사장,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워싱턴 전문가' 성 김 사장 등을 영입하며 미국 시장 전방위 대응을 위한 진용을 꾸렸다.
정 회장의 미국 집중 전략이 유효함은 사상 최대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 각각 175조2312억원, 107조4488억원의 사상 최대 매출액을 각각 기록했다. 중국 저가 공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자동차 업계가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 모두 2년 연속 최대 매출을 올리며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현대차의 경우 지난 2018년 68만대였던 미국 판매량이 지난해 91만대로 뛰면서 성장세를 견인했다.
◇'이순신 리더십' 강조한 정의선… 불확실성 정면돌파 의지 피력
현대차그룹이 미국 집중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날로 거세지는 중국 전기차 공세, 6월 들어설 새정부와의 합맞추기 등은 과제로 꼽힌다.
정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위기를 언급하며 '이순신 리더십' 강조한 것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정 회장은 신년사에서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 5년간 지속해서 체질을 바꾸며 혁신을 추구해 온 우리는 어떤 시험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현대차그룹의 DNA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대내외 불확실성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을 필두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트럼프 통상정책에 각자도생으로 잘 대응해 왔다"며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3~4개월은 지나야 정리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당분간 버티는 힘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