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관세 정책에 위험성 부각
달러 지위 위협할 수준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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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유로화 대비 3년 만의 최저 수준에 근접했고 수입품의 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어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반면, 미국 수출업체들은 수혜를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이 관세 정책의 핵심 내용을 두고 상반된 발언을 내놓고, 발표 내용을 곧바로 번복하는 등 혼란이 이어지면서 지난주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는 달러화와 미국 국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가 지난 9일 발효되기 직전, 미 장기 국채는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위기 상황에서는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가격은 오르고 수익률은 하락하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지난 11일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일시적으로 5%에 육박, 일주일 전 4.4% 대비 크게 상승했다.
또 금리 변동성도 크게 높아져 지난주 미국 장기 금리의 일중 변동 폭(최고 금리와 최저 금리의 차이)은 0.2~0.35% 수준으로 큰 폭의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규모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고 연쇄 파산 우려로 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2023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이와 동시에 달러 가치도 지속 하락해 금융시장의 전통적인 패턴이 무너졌다.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이를 "역사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와 관련 우려를 일축하면서 지난 14일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외면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달러 가치 하락이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가능성은 낮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달러는 약 7조 달러로, 2위인 유로화 보유량의 거의 3배에 달한다.
또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달러는 전체 국가 간 결제의 약 49%를 차지해 다른 어떤 통화도 이를 대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8조 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 시장 역시 대체 시장이 없다. 독일 국채의 발행 잔액은 1.4조 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미국 자산이 고평가 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경제 규모는 세계 경제의 4분의 1 수준인데, 미 증시는 세계 증시 시가총액의 65%를 점유하고 있어, 투자자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금 재배분에 나섰고, 이는 미국 자산에 대한 과도한 쏠림 현상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최근 스위스 프랑, 유로, 일본 엔화와 금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는 투자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혼란 속에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그러나 글로벌 달러 패권이 이번 무역 갈등을 극복하더라도, 단기적으로 달러의 전망은 밝지 않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키우고 있어 주가 하락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분석이다. 이 경우 달러 자산의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국채 시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전체의 약 30%를 보유한 해외 투자자들과 고빈도 거래 펀드 등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가 필수적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혼란으로 이탈 사태가 벌어지면서 국채 시장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