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산 200만달러 절감으로 프로덕션 능력 널리 인정받아
최종 편집권 지켜 본래 색깔 잃지 않은 것도 무형의 소득일 듯
|
지난 18일 기준으로 북미 지역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인 박스오피스 모조는 '미키 17'이 지난 달 초 개봉 이후 이날까지 전 세계 극장가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1억3058만1926달러(약 1855억원)로 집계했다. 2월 하순 국내 개봉에 앞서 봉 감독이 취재진에게 직접 밝힌 순 제작비 1억1800만달러(약 1676억원)에 미국 연예 산업 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추정한 마케팅 비용 8000만달러(약 1136억원)를 더하고 극장 수수료 등을 고려한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대략 3억 달러(약 4262억원)로, 지출 대비 수입으로 보면 극장 매출로는 투입된 돈을 회수하는데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극장에서의 이 같은 성적과 관련해 버라이어티는 "요즘은 영화 대부분이 극장 상영만으론 흑자를 내지 못하고 TV·스트리밍 플랫폼 판매로 손실분을 메우곤 한다"며 약간의 위로를 건네면서도 "보통의 경우, 영화 흥행 성적이 스트리밍 업체와의 계약 금액을 좌우하므로 '미키 17'의 적자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당초 '미키 17'은 봉 감독이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고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러더스의 투자를 받은 SF 장르란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수 차례 개봉 시기가 바뀌는 와중에 완성도를 두고 이런저런 뒷말이 나왔다. 공개 후에는 다행히 무난한 만듦새를 인정받았지만, 약간은 헐거운 극의 짜임새와 은근하지 못한 메시지 전달 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봉 감독의 작품치고는 아쉽다는 의견도 많이 쏟아져 전체적으로는 호불호가 선명하게 엇갈렸다.
그럼에도 몇몇 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미키 17'이 그저그런 실패작이라는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동의하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예산의 효율적인 운용에서 찾을 수 있겠다. 1억1800만달러는 우리에겐 천문학적으로 와 닿지만, 할리우드에선 중대형 규모의 제작비로 특히 SF를 만들기엔 살짝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봉 감독은 꼼꼼한 준비와 유연한 현장 지휘로 당초 책정된 예산에서 200만달러(약 28억5000만원)나 아꼈다고 한다. 예산 엄수를 통한 상호 신뢰 유지를 중시 여기는 할리우드에서는 흥행 결과와 상관없이 높은 점수를 얻을 만한 대목이다.
앞선 '설국열차' 때 북미 지역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현지 상영 버전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편집하려 했던 걸 교훈으로 삼은 봉 감독이 '미키 17'에서는 최종 편집권을 고수해 자신의 색깔을 유지한 것도 보이지 않는 소득이다. 할리우드의 러브콜에 취해 편집권을 내주고 무색무취한 연출자로 전락한 비영어권 감독들이 즐비한 현실을 고려하면 현명한 결정이었다.
따라서 '미키 17'은 박스오피스 성적이 아쉬운 '흥행' 실패작일 뿐, 봉 감독이 더 세계적이고 더 보편적인 영화 작가로 나아가는 과정과 해외와 손잡고 생존 활로를 찾아야 하는 한국 영화 산업에 있어선 꽤 의미있는 작품으로 남으리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당장 힘들어도 미시적인 숫자에만 집착하기 보다는, 좀 더 시야를 넓혀 멀리 보는 자세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뜻에서 이렇게 감히 주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