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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칼럼] 세금 5000억 아낀 국세청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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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07. 12:00

남성환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2만1150명의 국세공무원은 국가 수입의 최후 보루다. 그들은 법인세·소득세 등 숱한 세목의 세금을 늘 들여다본다. 지금 이 순간도 납세자가 세금 신고 납부를 제대로 하는지 파악하느라 불철주야 애쓴다. 국세공무원의 업무 태만은 곧바로 세수 펑크로 이어진다. 세수가 줄면 지출이 흔들리고 정부 정책에 차질이 빚어진다. 

이에 반해 납세자는 단 한 푼이라도 덜 내려고 무진 애를 쓴다. 세무사·회계사를 동원해 세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최대한 절세하려고 시도한다. 아예 세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탈세를 저지르는 납세자도 적지 않다. 그러다 세무조사를 받는다.

법이라는 게 속성 상 후행(後行)하기 마련이고, 세법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세법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 세금을 두고 마찰이 생기는 일도 흔하다. 납세자의 신고 납부서를 토대로 타당성을 따지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생긴다. 

대기업에는 많은 회계사 등이 포진해 있다. 세금 신고에서부터 납부까지의 일을 전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로펌 세무전문가들을 찾는 경우도 흔하다. 세무전문가들은 세법 적용을 놓고 국세청과 다툰다. 다툼이 치열할수록 사법부의 할 일도 늘어난다.

이 때 국세공무원들이 전심(全心)을 다하지 않으면 받아야 할 세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되돌려 주는 세금이 과연 타당한지 소홀히 대한다. 납세자는 세금을 아꼈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국세공무원이 최선을 다하면 세법에 따라 받아야 할 세금을 제대로 받는다. 돌려주지 않아도 될 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수 있다. 

국세공무원들의 끈질긴 대응과 집요한 업무 처리로 막대한 세금을 아낀 사례들이 최근 잇달아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론스타가 제기한 2430여억원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론스타는 세액의 환급청구권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소송은 1심과 2심 모두 국세청이 패소했기에 대법원의 판결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평가되고 있다. 

1, 2심 패소 후 대법원 상고심에서 승소하는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법원 사법연감(2024년)에 따르면 민사소송에서 원판결을 파기하고 대법원에서 새로 처리한 경우는 3.4%에 불과하다. 1, 2심 패소 후 승소 확률은 이보다도 더 작다. 1, 2심 패소 후 국세청 내부에서는 패색(敗色)이 짙었다. 그래서 반환 지연이자 부담 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금을 미리 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론스타 측 변호사는 당연히 국내 대형 로펌 소속이었다. 국세공무원보다 연봉이 몇 십 배나 더 많은, 말 그대로 전문가들인 이들 변호사를 상대로 국세공무원들이 끝까지 대응해 승소라는 깜짝 놀랄만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열정과 논리로 무장한 국세청 송무 분야 국세공무원들은 조세법 및 민사법적 법리와 증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방대한 관련 논문과 연구 자료를 제시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국세공무원들이 포기했다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날아갔을 것이다.

국세청은 이보다 앞서 같은 달 3일에도 기염을 토했다. 효성그룹과 2560여억원의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1, 2심에 이어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2013년 세무조사부터 올해까지 12년 동안 국세공무원과 기업 측 변호사들이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인 끝에 마침내 국세청 승리로 마무리됐다. 담당 국세공무원들이 철저한 세법 논리를 바탕으로 대응한 결과물이다. 1심과 2심을 합쳐 무려 40차례 진행된 변론에서 양측 간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이러한 소송 승소 이외에 국세공무원들은 제도 개선을 통해 받아야 할 세금을 받는 데 주력한다. 강민수 청장은 지난해 우연히 KTX에서 기획재정부 예산당국 고위관계자를 만나 감정평가사업 확대의 당위성과 세수와의 연계에 대해 집요하게 설명했다. 그가 애쓴 덕에 올해부터 초고가 아파트나 호화 단독주택에 대해 시가에 가깝게 감정평가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 제도 시행에는 강 청장의 설득을 받아들인 기획재정부 승인으로 51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미 올해 1분기부터 직·간접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예산의 200배에 달하는 약 1조원 상당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그냥 이전부터 내려오는 대로, 관행에 따라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세공무원들은 부유층에 대해 실제 가액 재산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게 맞는다는 판단에 따라 초고가 아파트 등에 대해 시가에 가까운 감정평가를 진행해 세금 부과를 대폭 높일 수 있게 됐다.

국세공무원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에 최선을 다할 때 안정적 세수가 확보될 수 있고 국가 살림살이도 구멍이 나지 않게 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등으로 세계가 혼란스럽고 국내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세입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세율 인상 없이 효과적인 수단들을 계속 발굴해야 하는 것은 국세청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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