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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의 안보정론] 트럼프 바람, 광풍(狂風)인가 강풍(强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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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08. 17:41

김태우 웹용 사진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워싱턴발 충격과 공포가 포효하고 있다. 발원지는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와 MAGA(위대한 미국 재건)'를 외치면서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예스맨' 참모들이다. 이 충격파는 국내와 국외 모두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정부효율부(DOGE)가 불요불급 정부 조직 폐쇄와 감원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외부를 향해 발사하는 충격파는 세계 통상질서와 안보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중국이 맞대응하면서 미·중 관세전쟁이 시작되었고,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안보비용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의 압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에서 부는 바람에 바깥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쓰러지기도 한다. 정부기구 축소 및 예산삭감 바람으로 국무부 산하 기구들이 해체되면서 세계 민주주의 확산과 독재국가 국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운영해오던 재단 및 언론·방송사들의 활동이 중단된 것이 그 예다. 그러는 사이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임시국방전략지침'을 통해 중국의 안보 도전 불용 및 대만침공 저지, 유럽방위를 위한 미국 개입 축소, 동맹국들의 안보비용 부담 증가, 미 본토방어 중시 등 네 가지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당연히, 내외에서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부기구 축소와 감원에 항의하는 제소가 이어지고 있고, 미·중 교역이 급감하면서 양국의 소비자들은 갑작스러운 물가인상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자체 핵우산 구축'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미국이 세계 지도국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국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라고 변호하지만, '고립주의 회귀'로 보는 해석도 있고 트럼프의 젊은 참모들이 대통령만 쳐다보면서 실행 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즉흥적으로 파격 제안들을 내놓고 있다는 불만도 있다. 그래서, 트럼프발 '충격과 공포'가 머지않아 위세를 잃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자강과 동맹' 둘 중에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에게는 트럼프발 '충격과 공포'의 실행력이나 지속력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는 트럼프 바람을 동맹을 다지고 국가안보를 튼튼하게 하는 '순풍'으로 만들어나가는 전기로 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한국이 전제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미국의 상대적 국력이 감소하고 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운다고 해서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여 미국이 2등 국가로 전락할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현재로서 중국의 성장이 어느 정도의 지속력을 가지는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으며 설령 성장을 지속한다고 해서 당장 세계의 판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둘째, 미국이 신고립주의·중상주의적 입장을 내세운다고 해서 지금까지 추구해온 미국 패권 유지, 서방문명 보호,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확산 등 세 가지 목표 중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서방문명 보호라는 목표를 완전히 포기할 것으로 가정해서도 곤란하다. 목표들의 비중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미국이 '엉클 샘'의 역할을 완전히 포기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셋째, 한국은 트럼프발 바람을 국익 우선주의에 매몰된 '미친 바람(狂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전통적인 국제정치 관행과 합리성을 내재하는 강풍(强風)으로 보는 것이 옳으며, 한국은 협상 전문가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 속에 내재하고 있는 '합리적인 진짜 목표'를 읽어내면서 그리고 한국이 가진 카드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미국과 협상하면서 동맹을 다듬어나가야 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對中) 전략을 중시할수록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최상의 전초기지이며, 경제적으로도 반도체, 조선, 원전 등에서의 협력공간이 열려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압도적 해양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건함(建艦) 협력이 시급하다. 게다가 한미 양국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지워질 수 없는 70년 혈맹의 역사를 공유한다. 미국은 6·25 전쟁에서 5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한국의 공산화를 막아주었고, 한국은 5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도왔으며, 한국은 동맹의 안보방패 아래에서 경제기적을 이루었다. 여기에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강대국들을 이웃에 둔 한국의 지정학적 여건까지 감안한다면, 가진 카드들을 십분 활용하여 슬기롭게 트럼프 바람을 극복하고 동맹을 추슬러나가는 것이 한국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종합할 때,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바람을 계기로 GDP 4% 국방비 시대를 열고 지금까지의 비대칭적 한미동맹을 상호호혜 원칙에 따라 동맹 구성국 각자가 의무와 역할을 다함으로써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국력집합(capability aggregation) 동맹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GDP 4% 국방비 시대의 개막을 통해 '상호호혜 동맹'으로 전환해 나가야 하며, 동시에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자강'에서 탈피하여 '자강을 기반으로 동맹'으로 가기 위해 더 많은 재원을 방위력 개선에 투입하면서 국방의 과학화·정예화에 박차를 가하고 병력 규모, 소요 장비, 복무기간, 군 가산점 등에서부터 예비군 정예화와 무형전력 강화에 이르는 국방 전반을 정치논리나 선거공학이 아닌 안보수요에 근거하여 조정해 나가야 한다. 한국과 대만이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이은 차기 전장(戰場)의 후보지가 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국방에서의 이런 혁신은 미국의 요구가 있든 없든 한국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이며, 동시에 조만간 한국에 상륙할 '워싱턴발 충격과 공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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