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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년의 잡초이야기] 상생의 지혜를 아는 ‘뚝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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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5. 15. 16:01

(37) 뚝새풀 그림
뚝새풀 그림
이른 봄, 들에 나가보면 보드라운 풀들이 논을 가득 채운 것을 보게 된다. 우리 파주 시골에선 '개풀'이라 불렀던 '뚝새풀'이다. 가을에 싹이 터서 조금 자라다가 겨울잠을 잔 뒤에 봄이 되면 빠르게 성장한다.

뚝새풀이 이렇게 서둘러 생장하는 것은 모내기철 전에 번식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다. 일찍이 자가수분(自家受粉)을 통해 씨앗을 맺은 후, 모내기를 위해 써레질로 논바닥을 뒤집을 때 땅속으로 들어가 가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때 땅속에 있는 뚝새풀의 줄기와 잎은 벼 생육에 큰 도움을 주는 거름 역할을 한다. 추수가 끝난 논의 빈 공간에서 뚝새풀이 주인 행세를 할 때는 반대로 벼의 줄기와 뿌리가 뚝새풀의 영양 공급원이 되어 상호 도움을 준다. 한 공간에서 생존 시기를 달리하며 서로 윈윈 전략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식물들이라 할 수 있다.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벼가 자랄 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비료 역할을 하니 뚝새풀이 참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 논에서 모내기 준비를 하며 고생하던 아버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아버지, 저 개풀 그냥 키우면 나중에 쌀 되는 거 아냐? 왜 없애고 다시 심어?" 철없는 어린 아들의 말을 듣고 허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으시던 아버지의 넉넉한 모습이 그립다.

같은 볏과 식물인 뚝새풀과 벼가 보여주는 상생(相生)의 메카니즘을 우리 인간들의 생활상과 비교하면 참으로 낯이 뜨거워진다. 하긴 인류보다 먼저 지구의 주인공이었던 대선배 잡초를 어찌 미물인 우리 인간들이 따라가랴.

그래도 최근에 잘나신 몇 분들이 보여주는 '나홀로 행태'는 최소한의 염치와 도의를 너무 벗어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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