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 위해 안전 대출에 몰려
전문가 "배드뱅크·자본확충 유도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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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은행들은 불경기 속에도 올해 1분기 4조원이 훌쩍 넘는 역대급 순익을 올렸다. 하지만 기업과 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라는 역할은 낙제점이란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배드뱅크 설치, 자본 확충 등 대기업 대출로의 쏠림 현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 합계는 838조1595억원으로, 한 달 동안 6조8805억원이 증가했다. 증가폭으로 보면 지난해 6월(6조8803억원) 이후 가장 큰 수준이다.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로 인해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 확대로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대출 증가세는 대기업대출이 주도했다. 지난달에만 5조741억원이 증가하면서,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 합계는 사상 처음으로 170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중소기업대출은 같은 기간 1조8064억원 증가에 그쳤다. 올해 초부터 5월 말까지 중소기업대출 증가액은 4조5121억원으로, 이는 전년 동기(10조1920억원) 대비 55.7% 감소한 수준이다.
은행들이 대기업대출을 크게 늘린 것은 건전성 지표 관리를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경기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를 중심으로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이 급증하자,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대기업대출 위주로 확대한 것이다. 1분기 5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59%로, 작년 말(0.49%)보다 0.10%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최근 8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대출 부문 고정이하여신 규모도 4조6626억원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20% 넘게 급증했다.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각 금융그룹이 지난해 발표한 보통주자본비율(CET1)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위험가중자산(RWA)을 관리해야 하는데, 국제기준인 바젤3에 따르면 기업대출에는 가계대출보다 높은 위험자산 가중치가 적용된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출할 경우, 대출액의 150%가 위험가중자산으로 포함된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소기업대출을 줄이고, 그 자리를 대기업대출로 채우는 방식의 전략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가 자금난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대출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071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6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6월 자금사정 지수는 74.9로 전년 동기보다 2.8포인트 낮았다. 지난해 고금리로 한계기업이 급증했던 때보다 향후 자금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경기 악화 속에도 5대 은행은 1분기에만 4조3349억원이란 역대급 순익을 올린 반면, 주요 고객층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자금 공급에는 인색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 등 가계대출 규제와 취약차주 증가로 기업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대출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와 은행들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장은 "정부 차원에서 정책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배드뱅크를 설치해 중소기업 부실대출을 정리하는 등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늘어나는 중소기업대출 수요에 대응하려면 은행의 자본 확충을 유도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