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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리·살보·터렐...해외 현대미술 거장展 잇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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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7. 07. 14:15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 전시, 국내 최대 규모로 뮤지엄 산에서 열려
이탈리아 화가 살보 국내 첫 개인전, 글래드스톤서 진행
페이스갤러리에선 17년 만에 제임스 터렐 한국 개인전 개최
그라운드 전시 전경 뮤지엄 산
영국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세계 최초로 상설 전시하는 공간 '그라운드'(Ground)의 전경. /뮤지엄 산
올 여름, 한국 미술계는 세계적 거장 3인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영국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 이탈리아의 화가 살보, 미국의 빛 예술가 제임스 터렐이 각각 개인전을 열어, 서로 다른 매체와 접근법으로 인간과 자연, 공간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한솔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 새롭게 문을 연 '그라운드'는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세계 최초로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다. 로마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아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협업으로 탄생한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선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 만나는 돔 형태의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7점의 인체 조각과 함께 치악산 능선을 바라보며 명상적 경험에 빠져든다. 녹슨 철로 만들어진 조각들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받아들이며, 교토 료안지 바위 정원처럼 고요한 정거장 역할을 한다.

영국 조각가 앤서니 곰리 뮤지엄 산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 /뮤지엄 산
"이 공간은 몸이 딛고 설 수 있는 땅으로서의 그라운드이기도 하고, 경험의 장으로서의 그라운드이기도 하다"는 곰리의 설명처럼, 이곳은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살아있는 악기와 같다. 공간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모든 소리가 증폭되어, 관람객의 존재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상설전시장 개관과 함께 뮤지엄 산 본관에서는 곰리의 개인전 '드로잉 온 스페이스'(Drawing on Space)가 열리고 있다. 마치 기포로 이뤄진 듯 인체를 가볍게 구현한 조각을 비롯해 신체와 공간, 빛의 상호 관계를 표현한 드로잉과 판화 연작, 공간 설치 작업 등을 볼 수 있다.

살보 'Aprile' 살보재단.글래드스톤
살보의 'Aprile'. /살보재단·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는 이탈리아 화가 살보(본명 살바토레 만지오네·1947∼2015)의 국내 첫 개인전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1960년대 아르테 포베라 운동에 참여했던 살보는 1973년부터 구상 회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몽환적 풍경화로 명성을 쌓았다. 살보는 최근 몇 년간 미술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여행'이다.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목격한 풍경들을 1988년부터 2015년까지 그려낸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탈리아의 여름 휴가지 포르테 데이 마르미부터 독일 슈투트가르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이집트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풍경이 살보만의 따뜻한 색감으로 재탄생했다.

살보의 그림은 세밀한 묘사 대신 형태의 단순화와 빛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색감으로 마치 꿈속 풍경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시칠리아, 노르만, 아랍 양식이 결합된 교회 건축물을 그린 '오토마니아' 연작은 단순한 조형 속에 담긴 종교적 메시지를 탐구한다. 전시 마지막 작품인 우즈베키스탄 키바의 풍경화는 작가가 생전 가보지 못했지만 그리워했던 도시에 대한 마지막 오마주다.

서울에서 만나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YONHAP NO-5338>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전경. /연합뉴스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는 17년 만에 제임스 터렐의 한국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82세의 '빛의 마술사'는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빛과 공간을 통해 인간의 지각을 바꾸는 작업을 해왔다.

"미술사에서 빛을 묘사한 작가들은 많았지만, 나는 빛 자체를 다루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는 터렐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빛을 재료로 공간을 조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국내 첫 공개되는 '웨지워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교차 투사되는 평면의 빛을 통해 공간의 물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서로 다른 매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 작가이지만, 이들의 작품에는 공통된 화두가 흐른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성찰, 그리고 관람객의 능동적 참여를 통한 예술 경험의 확장이다.

곰리는 철이 녹슬어가며 변화하는 조각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자연과의 교감을, 살보는 여행을 통해 만난 다양한 풍경들을 몽환적으로 재해석하며 문화 간 소통을, 터렐은 빛이라는 비물질적 재료로 인식의 한계를 탐구한다.

곰리의 개인전은 11월 30일까지, 살보는 7월 12일까지, 터렐은 9월 27일까지 열린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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