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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는 별다른 사건 없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영해에서 신기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하였다. 5년 전 영덕에 정착한 청년예술가들이 지역에 귀촌한 창업청년들을 초대한 네트워크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 귀농청년에서부터 카페와 식당을 창업한 청년, 영덕에서 나는 수산물로 밀키트 사업을 구상하는 청년, 뜨개질하고 명상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청년에 이르기까지 30명 정도의 청년들이 모여서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골 살이의 경험과 즐거움을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된 오지에서 이런 만남이 있으리라고 예상치 못했기에 대단히 유쾌하고 신선한 자리였다.
지난 5월부터 필자는 영덕군 영해면을 자주 오가게 되었다. 경북도청과 영덕군이 지원하는 '영해 이웃사촌마을 청년문화예술발전소 활동 지원사업'의 운영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요약하자면 청년예술가들을 영해면으로 초대하여 숙박과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소정의 창작작품비를 지원하여 영해에 어울리는 창작콘텐츠를 만들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의 주민과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교육 또는 워크숍을 실시하면 전문예술 강사로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며, 먼저 지역에 정착한 청년들과의 네트워크를 주선하여 영해가 청년예술가들이 살 만한 매력적인 동네임을 알리는 것이다.
'신현길의 뭐든지 예술활력' 첫 번째 칼럼에서 청년문화예술가들을 지역으로 초대하기 위해서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 작업할 수 있는 공간, 작품을 시작할 수 있는 지원금, 그리고 지역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와 전문 운영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는데, 동쪽 바다 끝의 작은 면에서 이미 이런 일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너무나 신이 났고,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해 청년문화예술발전소 사업에 신이 난 것은 필자뿐만이 아니였다. 함께 해 보겠다고 이 사업에 지원한 청년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서울과 멀리 떨어진 동쪽 바다의 영해에서 창작활동을 해 보겠다고 신청했느냐?"는 물음에 청년예술가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과 멀리 떨어져서 창작활동에 집중할 수 있고,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오히려 창작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술가라도 서울과 수도권의 삶은 시도 때도 없는 사회생활에 신경을 써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의심해야 한다. 도시의 생존문법에 매몰되어 버리면 창작보다는 생계에 비중을 두게 되고 예술가의 정체성은 어느새 희미해져 버린다. 영덕군 '영해 이웃사촌마을 지원센터'는 청년예술가들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서울과 대도시가 가지지 못한 것이 변방의 '오지' 영해에 있는 것이다. "지원금을 많이 주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창작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지원금만 따먹고 떠나버렸다"는 지역민의 불평이 사라지고, 예술가들의 자존감도 살아나서 좋은 콘텐츠가 창작될 것이다.
청년문화예술가들을 인구소멸지역에 생기를 돌게 할 '오지의 마법사'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지자체의 사고의 전환과 청년예술가를 환대하는 자세 그리고 전문운영조직의 능력에 달렸다. 이제 영덕군 영해가 전국적으로 주목받을 날이 곧 올 것이다.
/문화실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