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스님, 10년 넘게 국가무형유산 지정 위해 노력
"무형유산 있기 때문에 유형유산 존재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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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주지 원명스님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끊어진 생전예수재의 전통을 복원한 주인공이다. 원명스님은 동해 삼화사 회주 능혜당 명환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7년 사미계, 1979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마곡사 태화선원, 고불총림선원, 상원사 청량선원 등에서 안거 정진했다. 동해 삼화사 주지, 총무원 호법부장, 조계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현재 봉은사 주지 겸 조계종 의례위원장, 국가유산청 소속 국가무형유산 위원을 맡고 있다.
유형유산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무형유산이라고 강조하는 원명스님은 봉은사 생전예수재를 49일 동안 육바라밀을 닦는 수행이라고 정의했다. 살아있을 때 참회하고 공덕을 짓는 재인 만큼 가장 불교적인 의례라고 봤다. 다음은 스님과 나눈 대화다.
-봉은사 생전예수재가 국가유산청 무형문화유산에 신규 지정됐다.
"제가 삼화사 주지로 있을 때 수륙재를 국가무형유산으로 추진했는데 지정까지 9년이 걸렸다. 변방의 절인데다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쉽지 않았다. 봉은사는 서울 대형 사찰이라 좀 더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생전예수재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신규 지정되기까지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다른 종단도 자신들이 행하는 생전예수재를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가 '생전예수재'로 국가무형유산을 신청하지 않고 '봉은사 생전예수재'로 신청한 것도 다른 곳이 생전예수재를 국가무형유산에 올릴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생전예수재의 가치는.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자가 사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례다. 다른 이름은 시왕각배재다. 즉, 각 지옥을 다루는 시왕을 모시는 재라는 거다. 가슴 아픈 말로 상처주는 사람이 받는 과보가 칼산지옥이고, 누군가 열받게 하면 화탕지옥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 참회하고 육바라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보시·지계·인욕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일반인도 할 수 있다. 사는 동안 보시·지계·인욕만 해도 삶이 달라진다. 술을 자재 못해서 경찰서 가는 사례는 흔하지 않은가. 전 이 세 바라밀에 더 해서 신도들에게 금강경 독송·기도, 참선을 권한다. 적어도 49재 때만이라도 하라고 조언한다. 또 매일 100원, 1000원이라도 모아 회향 때 가져오면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1000원을 49일 동안 모으면 4만9000원에 불과하지만 여러 명이 모으면 수천만원이 되고 자연재해에 고통받는 이웃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봉은사 생전예수재가 뭐냐고 물으면 '49일 동안 육바라밀을 닦는 수행'이라고 말한다."
-봉은사 생전예수재의 특징은.
"우리나라 불교 의례 중 가장 큰 게 수륙재와 생전예수재다. 수륙재는 죽은 사람, 생전예수재는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수륙재가 발달했다. 유교의 제사는 간소한 데 비해 수륙재는 2박3일 지내고 웅장하니까 왕실 관계자 또는 권세가들이 많이 지냈다. 이에 비해 미리 닦고 수행하는 개념의 생전예수재는 불교적인 특색이 강하다 보니 환영받지 못했다. 유교 중심의 조선 사회에선 못 마땅했던 것 같다. 생전예수재가 다시 설행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돼서다.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무형유산의 가치를 보여주는 예다. 사실 유형유산은 무형유산의 잔재다. 무형이 있기 때문에 유형이 있는 것이다.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 대웅전과 부처님 불상이 있는 것이다. 유형유산 10개보다 무형유산 하나가 더 중요하다. 유형유산는 그 자리에 서 있고 활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형유산은 움직인다. 생전예수재를 하면 지화, 번, 장엄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중이 소통하고 화합한다. 무형유산은 공동체에 생기(生氣)를 불어넣는다."
-생전예수재 참여자 중 가피를 봤다는 사례도 있나.
"가피(加被·불보살이 힘을 주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언제나 은근하게 보호받는 명훈가피(冥勳加被)다. 명훈가피를 입으면 나쁜 일이 생기지 않고 뭔가 하려는 일이 잘 된다. 아픈 사람이 갑자기 낫는 것보다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삶이 유지되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이다. 생전예수재 이후 좋은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특별한 체험보다는 신실한 기도를 통해서 묵은 업장을 소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봉은사 시왕도를 모시기 위해 시왕전 불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
"1777년 봉은사에서 조성된 4폭의 시왕도는 현재 동국대 박물관에 2점, 국립박물관에 1점, 봉은사에 1점이 모셔져 있다. 10월에는 시왕전 불사가 끝난다. 국가유산이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모사본이라도 구해서라도 4점 모두를 시왕전에 모시려고 한다. 봉은사에서는 1년에 큰 행사가 부처님오신날 그리고 생전예수재 이렇게 두 개다."
-승려로서 가장 좋아하는 경전 구절이 있다면.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다.항상 마음에 새기는 구절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먹는 것 모두가 마음이 머무는 것이다. 좋고 싫어하는 마음에 집착하면 병통(病痛)과 갈등이 생긴다. 이는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봉은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사찰로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봉은사는 참으로 아름다운 절이다. 이 소리를 듣고자 조경에 신경을 썼다. 아름다운 환경에서는 나도 아름다워진다. 또 평온해지고 행복해진다. 보통은 사찰 대웅전의 뒷길은 내주지 않는데 봉은사는 둘레길을 만들어서 사찰을 한 바퀴 돌면서 볼 수 있게 했다. 봉은사를 찾는 모든 분이 잠시나마 행복하고 평화를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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