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 과반 미달에도 다득표 업체 선정…법적 정당성 논란
조합 “서울시 기준 따른 정당 절차”↔ 조합원 “의결 요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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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지난 4월 조합이 임시총회를 열고 설계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도정법상 설계업체 선정은 '총회 참석 조합원의 과반 이상 득표'를 얻어야 하지만, 집행부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업체를 그대로 선정해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조합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설계업체 선정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조합 측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 정관과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설계자 선정 기준 등을 따랐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가처분을 신청한 조합원 A씨는 "도정법에 명시된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설계업체를 선정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해당 가처분 사건과 관련해 조합원 A씨와 조합장 측을 불러 심문을 진행했다. 조만간 추가 심문을 통해 양측 주장에 대한 보완 설명을 들은 뒤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집행부와 일부 조합원 간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 확전된 셈이다.
해당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26일 오후 서소문별관 후생동 강당에서 열린 '설계자 선정' 등을 안건으로 한 임시총회부터다. 조합은 올해 1월 실시한 설계업체 입찰 결과 총 15개 업체 중 대의원회를 통해 5개 업체를 추려 총회에 상정했고, 이날 출석 조합원 318명 중 148명의 표를 얻은 B 업체가 최다 득표했다. 하지만, 과반인 160표는 채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조합 집행부는 B 업체를 설계자로 선정하고, 계약 체결 권한을 대의원회에 위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에 일부 조합원은 "도정법 제45조 제1항 및 제3항에 따르면 설계업체 선정은 조합원 총회에서 출석 조합원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도정법 제45조 1항 등에 따르면 설계업체의 선정은 조합원 총회의 의결 사항 중 하나다. 또 제45조 3항에는 '총회의 의결은 이 법 또는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즉, 최다 득표는 절차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A측은 "설계자 선정을 위한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이를 가결 처리한 것은 무효"라며 "조합장에게 여러 차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대의원회를 열어 계약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돼 가처분 신청에 나섰다"고 말했다.
A씨 등에 따르면 조합장 등 집행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합 정관과 서울시의 '공공지원 정비사업 설계자 선정기준', '공공지원 정비사업조합 표준 정관'에 따라 절차를 진행했으며, 이 기준에 따라 다득표 업체를 선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조합 정관 제12조 제2항에는 '협력업체 선정 절차, 계약 내용 및 체결은 관계 법령, 국토부 고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서울시 공공지원 설계자 선정기준에 따른다'고 돼 있다. 또 정관 제20조 제1항은 '총회의 의결은 도정법 또는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조합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설계자 선정 기준 중 입찰 지침서에는 '조합은 고득점순으로 이사회, 대의원회를 통해 총회에 상정할 업체 수(4개 이상)를 결정해 결정된 업체 수 만큼, 총회에 상정해 다득표로 선정한다'고 적혀있다. 요약하자면 조합 집행부는 이 조항을 근거로 서울시 설계자 선정기준이 정관에서 말하는 '다른 규정'에 해당하며, 이 기준에는 '총회 상정 업체 중 다득표 업체를 선정한다'는 지침이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조합원들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도정법 제45조는 설계자 선정은 총회 의결 사항이며, 이때의 의결은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는 한 과반 찬성을 전제로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합은 정관 제12조 제2항을 근거로 서울시 설계자 선정 기준이 정관상의 '다른 규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기준은 입찰 절차와 평가 방식 등을 안내한 것일 뿐 의결정족수 자체를 다르게 정한 규정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중구청 역시 이 사안을 두고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도심정비과 관계자는 "서울시의 공공지원 설계자 선정 기준이나 표준 정관은 조합 정관이 미비한 경우 참고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도정법이나 조합 정관보다 상위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해당 조합도 설계자 선정 기준 사전검토를 신청해 검토는 했지만, 법령 해석보다 우선하는 기준은 아니다. 결국 법원의 판단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설계업체 선정이라는 핵심 절차를 두고 법적 분쟁까지 이어지자, 조합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조합원은 "조합장이 가처분 신청에도 불구하고 이달 대의원총회와 다음 달 임시총회를 열어 기존에 선정된 설계자로 계속 밀어붙이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 조합원 사이에 조합과 특정 건설사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설계자 선정을 강행하는 것은, 이후 시공자 선정과정에서의 정당성 논란으로도 번질 수 있어 조합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본지는 이와 관련해 조합장 측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시도했으나, 조합장은 "소송 중인 사안으로 법원 결정 전에는 답변하기 어렵다"며 "이 점 양해해 달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