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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허균, 그리고 길동의 혼이 다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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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7. 15. 11:45

연극 ‘혼,길동전’, 7월 16일 대학로 개막
조선의 상처 위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광대놀음
고전 『홍길동전』을 빌려 오늘의 갈등과 선택을 묻다
포스터
아시아투데이 전형찬 선임 기자 = 전란 이후의 조선, 뒤엉킨 권력과 민심의 균열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시대의 절망을 마주한 이들이 선택한 방식은 의외로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 그리고 웃음. 16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대학로 제이원 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혼,길동전'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인물과 고전 '홍길동전'을 교차시키며, 유쾌한 상상력의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광해군과 허균, 그리고 시대의 상처를 품은 인물들이 고전을 빌려 광대놀음을 만들어내는 이 작품은, 연극이라는 매체의 집단적 상상력을 어떻게 현실과 연결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606년, 조선 선조 연간이다. 영창대군의 출생과 세자 책봉 문제로 민심이 요동치고, 세자 혼(광해군)은 선조의 시샘과 형 임해군의 위협 속에 정치적으로 고립된다. 이에 혼은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허균을 찾아가고, 허균은 그를 위해 고전 『홍길동전』의 틀을 빌려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기로 한다. 이때부터 여인들과 광대, 호위무사들이 힘을 보태 '혼,길동전'이라는 극중극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골자다.

연극은 단순한 고전 재해석을 넘어서, 극중극과 액터뮤지션이라는 형식을 접목시켜 시청각적 리듬을 부여한다. 액터뮤지션(actor-musician)은 배우가 극 속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장면을 주도하는 공연 형식으로, 음악과 움직임, 대사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몰입감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장면 전환과 감정의 흐름을 악기 연주를 통해 직접 만들어내는 방식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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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연창작프로젝트 짓다
세자 '혼' 역은 김광만과 김민성이 맡는다. 이들은 몰락 직전의 세자이자, 극중극에서는 '길동'으로 등장하는 인물을 연기하며, 억눌림과 해방, 절망과 회복 사이를 오가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표현할 예정이다.

허균 역은 이환의와 조재상이 더블 캐스팅되어, 자유로운 광대 기질과 해학을 살린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허균은 극중극에서 해설자이자 '길동의 아버지'로 등장해, 이야기 전개를 유연하게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기생 초낭(박은미)은 길동의 계모로, 대갓집 규수 백씨(이새날, 임예진)는 관상쟁이로, 노비 춘섬(김자연, 남희진)은 길동의 어미로 극중극에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전쟁 이후 사회적 약자이자 상처 입은 존재로 설정되어 있으며, 광대놀음을 통해 각자의 현실을 견디는 방식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세자의 호위무사 특재 역에는 장성훈, 이건희, 황요준이 출연하며, 극중극에서는 길동의 이복형 '길현'으로 변신한다.

작·연출을 맡은 이민준은 이번 작품을 통해 "변화의 과정과 그 갈등을 마주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에 따르면, '혼'과 '허균'은 각각 이상과 현실, 타협과 저항의 상징처럼 기능하며, 고전을 빌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사회 구조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찰하는 통로를 만들고자 한다. 허균이 '길동'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듯, 이 무대 역시 "우리는 어떤 순간에 타협하고, 어떤 순간에 변화를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조심스럽게 던질 것으로 기대된다.

'혼,길동전'은 공연창작프로젝트 짓다와 극단 밝은 미래의 협업으로 제작된다. '짓다'는 "미소를 짓다, 이야기를 짓다"라는 이름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며, 생동감 있는 움직임과 음악, 연기를 결합한 액터뮤지션 형식의 실험을 이어온 창작집단이다. 특히 음악극 '밋 어게인'과 연극 '돛단배'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서사를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주목받은 바 있다.

협력 제작을 맡은 '극단 밝은 미래'는 공연예술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을 도모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서로 다른 색깔을 지닌 두 창작집단의 협업은 이번 공연에 신선한 시각과 에너지를 더해줄 것으로 보인다.

고전 속 인물을 다시 불러낸 이들의 광대놀음은 과연 어떤 울림을 남길까. '혼,길동전'은 시대와 신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연극적 상상력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어떤 세계를 꿈꿀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되묻는 무대가 될 것이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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