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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수입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대표 품목은 쌀과 소고기로 전해집니다. 최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산 사과 수입 검토를 지시했다는 '풍문'도 돌고 있습니다.
미국산 쌀 수입 확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 시장 개방을 20년간 유예한 바 있습니다. 이후 관세화를 협의한 뒤 설정한 미국 저율관세할당물량(TRQ)은 연간 약 13만t입니다.
미국 배정 물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WTO 회원국 회람 및 이의제기 등에 대응해야 합니다. 특히 미국처럼 5% 관세가 적용되는 TRQ 쿼터국인 중국·베트남·태국·호주의 동의도 필요합니다. 국가 간 이해 대립이 극심한 지금 미국산 쌀 수입 확대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소고기는 '안전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합니다. 현재 미국산 소고기는 '30개월령 미만' 개체에서 나온 식용부위만 수입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이른바 '광우병(소해면상뇌증) 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국민 불안 정서가 극심했을 당시 고령 소가 발병 확률이 높다는 근거로 마련된 양국 합의점입니다.
한우협회는 정부가 농가 희생을 되풀이한다며 비판합니다. 그동안 개방 속에서 약속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1조원은 걷히지도 않았고, 도축장 전기세 감면은 일몰됐으며 송아지생산안정제는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반입으로 나타날 소비자 불안심리가 국산 축산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사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산물 수입은 현행 식물방역법, 국제식물보호협약, 수입위생조건 등에 따라 8단계 위험도 분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미국은 1993년 우리나라에 사과 수입 허용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절차상 2단계에 있습니다. 이는 과학적 검증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강하게 지시한다고 해서 단계를 축소하거나 생략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간 우리 농업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다자 간 통상 질서 속에 희생을 감수해 왔습니다. 하지만 FTA로 인한 가격하락 등 피해를 본 농업인에게 지급하던 폐업지원금은 2021년 폐지됐고, 피해보전직불금은 올해 일몰을 앞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농업이 개방으로 흘린 피가 반도체·자동차·전자제품 등 제조업 성장의 거름이 됐지만 수혈은 없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와 관련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던 입장을 최근 '결정된 사항 없다'로 수정했습니다. 우리 농업이 또 한 번 희생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전조현상'일까요. 과학적·절차적 근거 없이 농업을 수단으로 '홀대'하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허공에 식량주권, 식량안보만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