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희생 전제한 통상전략 수정해야"
안전성 우려 및 생산기반 붕괴 등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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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에 따르면 오는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 농민의길 등 생산자단체가 농업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이들 단체는 "정부가 대미(對美) 수출 주력 산업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의 관세 완화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며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민감한 농축산물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전략적 판단을 하려는 산업통상자원부 입장을 규탄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도 전날 대통령실 앞에서 농축산물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최흥식 한농연 회장은 "개방화 시대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30년 이상 희생하며 견뎌온 농민들을 또 낭떠러지로 몰아세우고 있다"며 "농업인 희생을 전제로 한 통상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대대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생산자단체 움직임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 이후 본격화됐다. 여 본부장은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상호관세 협상 타결을 위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는 "우리가 미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와 통상 협상을 하든 농산물이 고통스럽지 않은 협상이 없었다"며 "농산물 부분도 전략적 판단을 해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달부터 미국이 우리나라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는 남은 기간 관세율 조정을 위한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 측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관세 완화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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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 시장 개방을 20년간 유예한 바 있다. 이후 관세화를 협의해 저율관세할당물량(TRQ)을 연간 40만8700톤(t) 의무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미국 배정분은 13만2304t이다. 해당 물량은 5% 관세를 적용하고, 이외 추가분은 513%를 부과한다.
우리가 미국산 쌀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WTO 회원국에 관련 계획을 회람하고 이해관계국 이의제기 등에 대응해야 한다. 미국처럼 5% 관세가 적용되는 TRQ 쿼터국인 중국·베트남·태국·호주 등 4개국 동의도 필요하다.
홍영신 한농연 전남연합회장은 "미국 측 요구대로 TRQ 물량 확대나 쌀 관세율 조정 요구가 현실화되면 우리 쌀 산업은 더 이상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에서 최근 발생하는 쌀 대란과 최대 쌀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한 필리핀 사례처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오류를 절대 범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사과는 과학적 검증에 기반한 검역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행 식물방역법, 국제식물보호협약 등에 따라 8단계 위험도 분석 절차를 거쳐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해외 병해충이 국내에 유입돼 발생할 수 있는 농업계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미국은 1993년 우리나라에 사과 수입 허용을 요청해 현재 2단계에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외국산 사과 수입은 국내 법과 국제 기준을 바탕으로 마련된 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누군가 속도를 내라고 지시해서 단계를 임의대로 생략하거나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소고기는 '30개월령 이상' 수입 허용이 쟁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광우병(소해면상뇌증) 파동' 이후 30개월령 미만 소에서 나온 식용부위만 수입할 수 있도록 위생조건을 제정했다. 고령 소에서 광우병 발생 확률이 높다는 점에 근거해 양국이 마련한 합의점이다.
전국한우협회는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가 국내에 들어올 경우 소비자 불안 심리가 커져 국산 축산물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미국산 소고기는 이미 국내에 많이 들어오고 있고, (30개월령 제한 해제로) 수입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미국산 소고기 품질 및 신뢰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농식품부는 관련 우려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가 (농축산물 개방 관련) 결정한 사항이 없다"며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국민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관세 협상에 신중히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