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화학·유통 체질개선
식품사업엔 브랜드 강화 주문
"AI 활용 업무 효율성 높여야"
|
신 회장의 이번 메시지는 이러한 실기에 우회적으로 일침을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경영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에게 리스크와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며 변화를 선제적으로 관리해줄 것을 강조했다. 또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실패와 같다"며 본업 안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해 줄 것을 주문했다.
17일 롯데그룹은 전날부터 이틀간 신동빈 회장 주재로 올해 경영전략을 점검하는 '2025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 옛 사장단회의)'을 진행했다. 매년 하루 일정이었던 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1박 2일 일정으로 확대됐다. 그만큼 롯데그룹의 위기감이 반영됐다. 하반기 VCM에는 신 회장과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을 비롯해 롯데지주 대표이사 및 실장,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VCM은 시종일관 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간 VCM은 서울 송파 롯데월드타워에서 하루 일정으로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기간을 늘리고 장소 역시 인재개발원으로 바꿨다. 신 회장을 포함한 참석 임원들은 숙박과 식사를 모두 내부서 해결하며 '마라톤 회의'를 이어갔다.
신 회장은 그룹의 경영지표 개선을 위한 선결 과제로 핵심사업에 대한 본원적 경쟁력 회복을 강조했다. 경쟁력 회복을 위해선 브랜드 가치 제고와 사업군별 전략 추진 가속화, 생산성 향상 등이 필요하다고도 당부했다. 그는 "기업 경영에 있어서 치명적인 잘못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문제를 문제라고 인지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CEO는 5년, 10년 뒤의 경영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현재와 3년 뒤에 해야 할 일을 계획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브랜드는 우리 사업 경쟁력의 근간이자, 오랜 기간 축적해온 중요한 가치"라며 이를 강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또한 현재 사업군별로 추진 중인 전략을 속도감 있게 실행해달라고 했다. 화학군은 신속한 사업 체질개선을, 식품군은 핵심 제품의 브랜드 강화를 강조했다. 유통군은 다양한 고객 니즈를 충족 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 줄 것을 요청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4가지 과제도 주문했다. 우선 직원들의 직무 전문성을 강화하고 성과중심의 인사체계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장려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달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늦게까지 직접 회의장을 누비며 모든 CEO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업무에 임해주기를 촉구했다.
현재 롯데그룹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그룹의 양대 축인 화학과 유통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어서다. 롯데케미칼은 업황 회복 지연으로 2022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2021년 말 3조원 수준이던 순차입금이 올 1분기 기준 6조6000억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인도네시아 대형 석유화학 시설 투자 등으로 차입이 증가한 영향이다. 중국·중동발 석유화학 공급과잉과 원자재 가격 변동성은 회사의 수익성 회복에 더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신용등급도 AA0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됐다. 롯데케미칼의 위기는 그룹 전반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롯데지주(AA-→A+), 롯데물산(AA-→A), 롯데렌탈(AA-→A), 롯데캐피탈(AA-→A) 등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하향됐다.
유통 사업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확산과 내수 경기 둔화가 겹치며, 롯데마트는 올해 1분기 매출 1조184억원, 영업이익 67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 73.5% 감소했다. 식품 계열사들도 녹록지 않다. 롯데칠성음료는 매출 9103억 원, 영업이익 250억 원으로 각각 2.8%, 31.9% 줄었고, 롯데웰푸드는 매출이 2.5%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56.1% 급감하며 수익성이 악화됐다.
실적 부진 속에 조직 슬림화를 위한 구조조정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계열사 CEO 21명(약 36%)을 교체하고, 전체 임원의 22%를 퇴임시키는 등 대규모 인적 쇄신에 나섰다. 특히 화학 부문은 계열사 CEO 13명 중 10명을 교체하는 등 강도 높은 조정이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롯데온, 롯데면세점, 세븐일레븐 등이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지난 4월에는 롯데웰푸드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