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등 미래사업분야 M&A 속도전
조직 쇄신안·컨트롤타워 재건도 촉각
이재용 회장 등기이사 복귀 여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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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츰 정상화 단계를 밟고 있는 삼성의 경영·투자시계도 한층 빠르게 돌아갈 전망이다. 리더십 공백이 길어진 사이 반도체를 포함한 주력 사업은 경쟁력을 잃었고, 실적은 부진에 빠졌다. 한동안 멈췄던 대형 M&A도 올해 들어서야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대대적인 조직 쇄신과 신기술 투자를 비롯해 컨트롤타워 재건, 등기이사 복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삼성 안팎에선 이 회장의 본격적인 '뉴삼성' 구축 행보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대법원 3부는 1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한 혐의 등으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지난해 2월 1심에선 이 회장 등에 대한 19개 혐의 모두 무죄 선고가 이뤄졌고, 올해 2월 2심 역시 추가된 공소사실을 포함해 23개 혐의 전부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은 2심 판결 이후 상고에 나섰지만, 이날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 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경제계도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삼성전자의 사법리스크가 해소돼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재용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우리 경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해당 기업의 경영 리스크 해소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선 법원에 과도하게 기업인들의 발목이 묶이는 상고 관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1, 2심 후 기계적인 대법원의 상고 관례는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삼성도 묵묵히 절차를 다 수행했지만, 새로운 증거와 상황변화 없이 상고해 결국 소모되는 시간과 자원 낭비로 이어지지 않았나.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 본질은 이러한 구태적 관행 타파로 시작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의 무죄 판결을 가장 반긴 건 단연 삼성그룹이다. 경영 정상화에 본격 시동이 걸린 만큼 재도약 계기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에서다. 현재 그룹 대표격인 삼성전자의 경우 수년 간 이어진 사법리스크에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고 있다. 주력인 반도체 사업은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부진을 이어가면서 올해 1분기에는 30년 넘게 지켜온 D램 시장 1위를 SK하이닉스에 내준 상태다. 생활가전과 스마트폰 사업 역시 IT 수요 둔화와 중국 브랜드들의 추격, 미국의 관세정책 등 대내외 요인들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당장 2분기 잠정 영업이익(4조6000억원)만 보더라도 1년 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새 캐시카우가 절실하지만 2017년 9조원 규모의 하만 인수와 같은 대형 M&A도 지난해까지 사실상 멈춰 있었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이후 독일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을 2조3000억원을 들여 인수하는 등 올해에만 3건의 M&A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아쉬운 수준이다.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털어내면서 반도체와 AI, 로봇 등 미래 사업 분야 대형 M&A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컨트롤타워 재건과 등기이사 복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앞서 삼성전자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현재 유사한 성격의 사업지원TF 등을 가동하고는 있지만, 임시 조직이라는 점에서 그룹 전반을 아우르기엔 한계가 있다. 2019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 회장의 복귀도 최우선 과제다. 현재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지난해 말 연간 보고서에서 이 같은 사안 등을 혁신적 지배구조 개선 과제로 꼽기도 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의 삼성은 가전,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선대가 구축해 놓은 사업 구조에서 하드웨어 중심으로 성장해왔다"며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 만큼 이제는 AI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는 이재용 회장 만의 차별화된 미래 비전을 내놓을 때"라고 밝혔다. 또 "삼성은 구글이나 애플과 달리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그룹 전반을 들여다보고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의 컨트롤타워는 필수"라며 "이 회장 역시 등기이사 복귀를 통해 경영 전면에 나서야 쇄신 작업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