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여의대로] 현대차 싱가포르 혁신센터를 다녀와서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50721010012159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5. 07. 21. 18:07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싱가포르의 매력, 과거에는 자유무역항, 지금은 플랫폼국가 지향에서 나와
김이석 논설고문
논설고문
지난주 싱가포르의 현대차 혁신센터와 난양공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에 대한 관심에 더해 현대차의 새로운 스마트 공장 혁신에 대한 궁금증이 필자를 설레게 했다. 싱가포르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1960년도부터 1990년경만 하더라도 싱가포르는 대한민국, 대만, 홍콩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의 4룡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에서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3배인 9만 달러 정도로 세계 최정상급으로 올라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자유도에서 세계 1위를 달리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글로벌 금융기업들이 2010년대 후반부터 홍콩에서 싱가포르로 아시아본부를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홍콩의 정체와 싱가포르의 성장세가 뚜렷해졌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외부적 요인이 하나의 계기가 됐음은 분명하지만 홍콩을 떠나는 기업들이 하필 아시아본부를 싱가포르에 두는 것은 싱가포르가 가진 내부적 매력 때문일 것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혁신센터를 싱가포르에 세운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 금융업의 허브로 홍콩보다 더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잠재력을 지닌 글로벌 기업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가 이제 싱가포르로 몰린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전쟁 등 큰 사건에 대한 정보에서 남보다 앞서면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이에 뒤지면 돈을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국 기업 등에 대한 정보가 중국 내부에서보다 싱가포르에서 더 흘러 다닌다는 말까지 들었다.

현대차가 글로벌 혁신센터를 싱가포르에 세워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을 위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을 탐구하는 것도 싱가포르가 이런 정보 획득에 유리한 데다 기술 개발을 위한 인력을 구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차 혁신센터가 위치한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에는 구글 데이터, 지멘스, 머스크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입주해 있어 혁신적인 연구 개발을 하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가 다른 곳에 비해 유리하다.

자동차 스마트 팩토리도 결국 AI와 로봇 등을 제조공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장이다. 이 분야 싱가포르의 인력 수준은 이미 세계 최정상급이다.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는 2025년도 '컴퓨터공학·정보시스템' 전공 대학순위에서 싱가포르국립대학과 난양공대를 세계 4위와 6위로 각각 평가했다. 미국 MIT가 1위, 하버드대가 7위, 중국 칭화대가 11위, 한국의 카이스트가 29위, 서울대가 44위로 평가됐다. 난양공대가 1991년 카이스트를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일종의 역전이 벌어진 셈이다.

아무튼 현대차 싱가포르 혁신센터의 자동자 제조 공장에 들어서면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폿'이 먼저 눈에 띄었다. 넓은 스마트 공장 안에 작업자들은 의자에 앉는 대신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작업을 하는 게 눈길을 끌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던 주차 로봇도 있었다. 작업자들은 많지 않았지만 '눈'을 장착한 로봇들이 분주하게 공장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소음과 분진이 거의 없어서 도심 속 빌딩에서 자동차 제조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싱가포르 혁신센터는 기존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아니라 셀 방식이다. 시카고 도축장에서 소가 쇠고기로 분해되는 과정을 보고 그 역순으로 부품들을 조립해서 완성차를 만드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서 포드 자동차가 모델 T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컨베이어 시스템은 소품목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어느 한 곳에서만 문제가 발생해도 전 과정이 올스톱되고 단순반복 작업에 따른 문제도 있다. 그래서 로봇과 AI 기술을 도입한 셀 방식의 스마트 공장을 실험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현장 관계자의 '스마트 공장'에 대한 설명이었다. 스마트 공장이라고 하면 흔히 인간의 개입 없이 더 많은 로봇들이 사람 대신 작업하는 자동화를 연상하기 쉽지만, 그 핵심은 제조 과정에서 각종 트러블이 발생할 때마다 문제의 내용과 해결 과정이 데이터로 축적되어 더 바람직한 공정을 '스마트'하게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가 가진 매력이 홍콩을 떠난 글로벌 금융기업들을 싱가포르로 오게 만들고, 글로벌 자동차메이커로 성장한 현대차의 혁신센터도 싱가포르의 주롱지구로 오게 만들었다. 결국 이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동시에 "싱가포르가 1인당 국민소득에서 아시아 최초로 9만 달러를 넘어서게 한 이유"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다.

싱가포르는 동인도회사에 의해 처음 개발됐을 때 관세가 없는 자유무역항을 선언해서 번창한 바 있다. 마치 인터넷상 트래픽 자체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포털들이 이메일을 무상으로 배포했듯이, 싱가포르가 관세가 없는 자유무역항을 선언하자 많은 배와 물자가 몰려들어 싱가포르에서 거래할 것들이 무수히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싱가포르는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와서 거래를 하도록 유도하는 '플랫폼' 국가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기치로부터 기업들이 느끼는 싱가포르의 매력이 생성되는 것이 아닐까. 경제성장을 내세우는 정부도 한번 고심해 보기 바란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