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 의무화 되기 전 위협 차단 포석
경영권 방어 수단 마련 '꼼수'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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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자사주 활용법이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그간 자사주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활용돼 온 만큼, 소각으로 인해 닥칠 수 있는 위협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임직원들에게 내어준 자사주들이 경영권 공격을 받을 땐 결국 백기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임직원들의 성과·격려 등 상여를 목적으로 자사주 처분 결정을 내린 상장 기업 수는 총 19개다. 코스피 시장에서 11개사, 코스닥 시장에서 8개사가 이 같은 내용을 공시했다.
구체적으로 상장사들은 우리사주조합, 스톡옵션, RSU 등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자사주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스톡옵션은 임직원이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자사주를 매수할 권리를 뜻하고, RSU는 임직원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자사주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일례로 건설기업 서한은 지난 17일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전부(270만주)를 처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200만주는 임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한 RSU 교부용으로, 나머지 70만주는 직원의 복지지원 및 근로의욕 고취 목적으로 사내복지기금에 출연한다. 서한 주가는 공시 이후부터 이날까지 2.8% 떨어진 상태다.
또 코스피 상장사 넥센은 다가오는 29일 직원들에게 격려 목적으로 자사주 3만9730주를 지급한다. 지급일 기준 재직 중인 기능직 사원 410명을 대상으로 근속 1개월 이상 조건을 내세웠다. 신일전자와 링네트는 자사주 32만7119주, 16만7420주를 임직원 근로의욕 고취를 위해 우리사주조합에 성과급으로 제공한다.
업계에선 상장사들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의식하고, 이 같은 '자사주 활용법'을 선보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도 입법화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만큼, 강제 소각 이전에 조금이라도 기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사주를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이날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를 취득 즉시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재발의하기도 했다.
시장에선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보단 임직원들에게 보상함으로써 사기를 진작시키는 게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사주 소각이 주당 가치를 높여 주가를 부양시키는 건 맞지만, 그 효과가 단발성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사주를 임직원들에게 배분하면 대주주로선 자사주를 사익을 취하는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전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을 피하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우회적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권이 위협 받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임직원들에게 내어준 자사주들이 우호 지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박태경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잃게 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고 인센티브 형식으로 자사주를 지급한 것 같다"며 "기업 입장에선 자사주를 받은 임직원들에게 이면적으로 팔지 말고 보유하고 있어 달라고 얘기할 수 있고, 또 같은 임직원들이기 때문에 외부 공격이 있을 때, 백기사가 될 것이라는 묵시적인 신뢰가 형성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한 연구원은 "특히 우리사주와 같이 자사주를 주식 배당하는 것처럼 주는 경우에는 기업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키운다"며 "기업이 우리사주를 누가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는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권이 위협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들을 직접 관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