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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한국천주교에 따르면 안 신부는 전날 오전 10시께 서울 종로구 소개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사제 숙소에 머물던 중 삶을 마무리하고 눈을 감았다.
1939년 경기 이천시에서 태어난 안 신부는 중동고와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사제품을 받았다.
안 신부는 용산본당 보좌신부로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동대문·이문동·금호동·아현동·사당동·고척동·일원동 본당에서 주임신부를 지냈다.
그는 권력의 억압에 항거하며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에 따르면 안 신부는 유신 정권 시절 사제가 세상의 고통과 불의 앞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1974년 발생한 지학순 주교 납치 사건을 계기로 구체적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학순 주교가 유신체제를 비판했다가 중앙정보부에 구금되자 안 신부는 "주교님을 공산주의자로 모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 우리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지구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고 사제단은 전했다. 그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다"며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당시 안 신부를 비롯한 사제들이 명동성당에 모여 순교자찬미기도회를 열었는데 이 기도회가 종교 활동을 넘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고인은 1976년 3월 1일 재야 정치인, 가톨릭 신부, 개신교 목사, 대학 교수 등이 명동성당 미사 중에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한 '명동 3·1' 사건과 관련해 기소되는 등 시국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다 서빙고 인근에 있던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유신독재 반대 활동, 긴급조치 피해자 지원, 부정선거 고발, 노동운동 지지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안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상임대표, 장준하특별법제정 시민행동 공동상임대표, 안중근평화연구원 원장, 천주교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 명동대성당 지하 경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30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엄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