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 초가을 태풍 위력 강화
태풍 피해 95%가 '가을 태풍'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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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1~2020년) 동안 9월에 발생한 태풍은 연평균 5.3개로, 과거 30년(1991~2020년) 평균 5.1개보다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가을 태풍도 0.8개에서 1.0개로 증가했다. 10월 태풍도 유사한 증가세를 보인 반면, 여름철인 8월 태풍은 5.6개에서 5.1개로 오히려 줄었다.
여름 태풍이 감소하고 가을 태풍이 증가한 것은 지구온난화 영향이 크다. 봄부터 달궈진 동태평양 수온이 오르면서 열대 동·중태평양의 대류 활동이 활발해지면 서태평양에는 하강기류인 고기압이 자리 잡아 상승기류인 태풍 발생을 억제한다.
반면 동태평양 수온이 안정되기 시작하는 가을철에는 동아시아 인근 해수면 온도 영향을 크게 받는다. 태풍은 열대 해상의 고온의 바닷물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상승기류를 만들면서 발생하기 때문에 해수면 온도가 높을수록 규모와 발생 가능성은 커진다.
이러한 기후 메커니즘은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더위를 유발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에 자리 잡고 있어 태풍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고기압이 점차 물러나는 8월 말 이후에는 열대 해역에서 강하게 형성된 태풍이 한반도까지 북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는 "추분인 9월 23일까지 태양 복사열이 열대역으로 계속 내리쬐기 때문에 수온은 점점 올라가고, 이 때문에 강한 태풍은 전부 가을에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20년 동안 국내에 큰 피해를 안긴 태풍은 대부분 가을에 발생했다. 기후에너지 연구기관 넥스트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피해 복구액이 가장 컸던 태풍은 2003년 9월의 '매미'로 10조6146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어 2012년 9월 '산바'는 1조2832억원, 2019년 10월 '미탁'은 1조1065억원, 2022년 9월 '힌남노'는 1조242억원의 복구 비용이 들었다. 이처럼 피해 복구액 상위 4건 모두 가을철 태풍이었으며, 최근 10년간 전체 태풍 피해 복구액 중 가을 태풍의 비중은 95%에 달한다.
특히 여름철 극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올해는 한반도에 강한 가을 태풍이 올 가능성이 크다. 북태평양고기압이 견고하게 형성돼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해수면 온도가 높다는 뜻이다. 해양기후예측센터(OCPC)는 올해 7~9월 3개월 평균 동아시아해역 수온이 평년보다 0.6도 높은 26도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허창회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최근 북태평양고기압이 서쪽으로 밀려나는 시기가 늦어지면서 태풍이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고 한국 쪽으로 돌아오는 빈도, 지속 시간이 늘었다"며 "북태평양과 남중국해 해역의 따뜻한 해수면 온도가 태풍에 많은 에너지를 제공하면서 가을철 한반도에 태풍과 강수량이 증가하기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