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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금융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STO, 증권형 토큰 발행(Security Token Offering)이다. 말은 복잡해 보여도 구조는 단순하다. 실물 자산(부동산, 미술품, 지식재산권, 탄소배출권 등)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하고, 이를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자산의 유동성 확대, 거래의 투명성, 글로벌 투자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한발 앞서 있다. 싱가포르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STO를 공식 제도권에 편입했고, 일본과 독일 역시 법률적 기반을 마련해 실질적인 발행과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다양한 산업 자산을 STO 형태로 유통하며 수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실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제자리다. 금융당국은 "STO를 허용했다"고 밝히지만, 현장에서는 "정확히 무엇이 허용됐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선언은 있었지만, 실행 가능한 제도·기준·인프라가 없다. 법적 지위도 불분명하고, 발행 주체와 투자자 보호 기준도 모호하다. 들어오라 해놓고 문은 열지 않은 꼴이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형 STO를 만들자"는 담론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STO를 설계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산은 충분하다. 한국의 부동산, K-콘텐츠, 지식재산권, 신재생에너지 자산은 모두 글로벌 투자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부족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력과 금융 설계 역량이다.
규제 완화만 외칠 일이 아니다. 제도를 정비하고, 기술과 결합된 금융 플랫폼을 만들고, 시장이 움직일 수 있는 유통 생태계와 신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기관도 기존 시스템을 지키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다가올 변화의 중심에 서려는 전략적 시각이 필요하다.
넷플릭스도 처음부터 "오징어 게임"을 만든 것은 아니다. 플랫폼을 먼저 만들었고, 그 위에서 콘텐츠가 기회를 만났다. STO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구조와 시도할 수 있는 무대다. 자산을 디지털 금융 콘텐츠로 전환하고, 이를 세계 시장과 연결하는 플랫폼을 여는 것. 그것이 진짜 시작이다.
우리는 여전히 국내 시장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글로벌 투자자와 자본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글로벌 STO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들 때다. 우리 자산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먼저 열고, 대한민국 STO 플랫폼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단지 규제를 완화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해외 투자자와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는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혁신은 내부를 바라볼 때가 아니라, 밖을 향할 때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고진석 한국디지털자산평가인증 전문위원, 텐스페이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