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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칼럼] 인체의 언어를 번역하는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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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7. 29. 14:58

- 3세대 HDT가 여는 전 국민 초개인화 의료의 미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 침묵하는 인체, 그 언어를 해독하다

인체는 매 순간 수십억 개의 분자들이 나누는 대화의 무대다. 세포들은 정교한 생화학적 언어로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현대 의학은 이 생물학적 교향곡의 단편적인 선율만을 포착해왔다. 마치 고대 상형문자 앞에 선 고고학자처럼, 우리는 인체가 보내는 복잡한 신호를 불완전하게 번역하며 추측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멀티오믹스 기술의 발전으로 인체의 '언어'를 정확하게 해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구글 번역기가 언어의 바벨탑을 허물었듯이, 새로운 의료 기술들은 생물학적 소통의 장벽을 해체하여 건강 관리 및 질병치료의 꿈의 패러다임인 4P Medicine을 현실화하고 있다. 정밀(Precision), 개인화(Personalization), 예측(Prediction), 예방(Prevention)으로 상징되는 4P Medicine의 발달은 의료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특히 노인의 경우 신체기능과 질병패턴이 개인차가 심한 다양성과 복합적요인에 기인하고, 다중적 패턴과 퇴행적 변화 때문에 기존의 의술로는 진단과 치료가 정확하지 못하고 비효율적이었기에 새로운 의료는 미래 초고령사회에 필요할 뿐 아니라 획기적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이 중에서 HDT(Human Digital Twin, HDT) 기술은 이러한 꿈의 의료를 실현하는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 HDT 기술의 진화: AI 의료의 최종 지향점

HDT 기술의 진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1세대 HDT는 정적인 유전체 데이터에 의존하여 50-60%의 제한적인 예측 정확도를 보였다. 2세대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하여 생리적 대사적 변화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여 75-85%까지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이제 우리가 맞이하는 3세대 HDT는 AI 의료의 정교한 결정체이다. 유전체, 후성유전체,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미생물군유전체 등 생명 현상의 총체적 정보를 통합 분석하여 개인별 '통합 오믹스 지도'를 구축한다. 이들을 분석하면, 인체 신호의 90% 이상을 정밀하게 해독할 것으로 예상한다.

◇ 멀티오믹스 분석, 생명 현상 이해의 패러다임 전환

기존 의료는 주로 단일 차원의 정보에 의존해왔다. 혈액검사로 특정 바이오마커를 측정하거나, 유전자 하나의 변이를 찾아 질병을 예측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마치 교향곡을 한 악기의 소리로만 듣는 것과 같았다.

반면 멀티오믹스 분석은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유전체는 '설계도'로서 개인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청사진을 제공하고, 후성유전체는 환경과 생활습관이 유전자 발현에 미치는 '조절 스위치' 역할을 보여준다. 전사체는 현재 세포에서 실제로 작동 중인 유전자들의 '실시간 활동 상태'를 알려주며, 단백체는 실제 생체 기능을 수행하는 '실행 분자들'의 현황을 파악하게 한다.

특히 대사체는 모든 생화학적 과정의 '최종 결과물'로서 개인의 현재 건강 상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여기에 미생물군유전체가 더해지면서 인간과 공생하는 미생물들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다층적 정보의 통합 분석을 통해서만 개인의 진정한 생물학적 특성과 질병 위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단일 오믹스로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상호작용과 개인차를 비로소 포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본격적인 발전을 위한 핵심은 최첨단 거대 언어 모델(LLM)과 연동된 대화형 인터페이스다. 복잡한 의료 데이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며,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개인의 건강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개인이 완전한 데이터 주권을 갖는 방안을 동시에 추진하여야 한다.

◇ 전 국민 초개인화 의료 인프라의 구현

3세대 HDT의 진정한 가치는 전 국민에 대한 초개인화 정밀 의료(Personalized Precision Medicine)를 실현하는 국가적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소수만 누렸던 '컨시어지 의료'를 모든 국민이 접근할 수 있는 '보편적 컨시어지 의료'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AI 챗봇(24시간), 일차 진료의, 전문의로 이어지는 저비용 고효율 프리미엄 케어가 전 국민에게 제공된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민주화를 통해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전담 의료진을 갖는 것과 같은 수준의 개인화된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게 한다.

3세대 HDT를 국가적 의료 인프라로 구축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전 국민 초개인화 정밀 의료를 실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삶의 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고 국가 경쟁력을 크게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 될 것이다.

◇ 예측 예방 의료로의 패러다임 전환

3세대 HDT는 질병 중심의 사후 치료를 건강 중심의 예측 예방의료(Predictive & Preventive Medicine)로 근본적으로 전환시킨다. 질병 발생 이전에 위험 요인을 식별하고 예방적 개입을 통해 헬스케어 비용을 30-50%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예를 들어, 제2형 당뇨병의 경우 발병 위험을 5-7년 전부터 예측하여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다중 오믹스 프로파일을 바탕으로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을 사전 시뮬레이션하여, 개인간 10배 이상 차이나는 적정 용량을 정밀하게 예측한다. 또한 AI 시스템이 최신 의학 연구를 실시간 학습하여 의료진에게 최적의 의사결정 지원을 제공한다.

◇ 전국민 의료보험과의 시너지

우리나라의 전 국민 의료보험 시스템은 3세대 HDT와 결합할 때 세계적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 국민의 의료 데이터가 체계적으로 축적되어 있고, 높은 의료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임상 데이터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따라할 수 없는 강점이다.

여기에 높은 기술 수용성, 우수한 IT 인프라, 뛰어난 의료 인력이 더해지면 'K-의료'라는 새로운 한류를 창출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제노시스 AI헬스케어 같은 기업이 수 십개의관련 특허를 출원하며 3세대 HDT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삼성전자와 LG 같은 대기업들도 AI 의료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의료 문명의 새로운 서막

우리는 의료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3세대 HDT를 통해 인체의 복잡한 생물학적 언어를 해독하고,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며, 전 국민이 개인 맞춤형 최적 건강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 문명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을 세계 3대 의료 강국으로 이끌 견인차가 될 것이며, AI 의료의 최종 지향점을 실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특히 시기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노인층의 건강을 온전하게 지키고 효율적으로 조처하여 행복한 장수사회를 구축하기위해 서둘러서 추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인체의 언어를 완벽하게 번역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는 인류의 건강과 웰빙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21세기 의학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 될 것이다.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저자 소개) 박상철 석좌교수는...

노화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 역임. 삼성종합기술원 부사장 시절에는 산업계와 의학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융합 연구의 토대를 마련. 이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와 웰에이징연구센터장을 역임하며 노화 과학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한국노화학회 회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국내외 노화 연구를 선도.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와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으로 기초 의과학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 과학기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 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및 의약학부장 역임. "생명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장수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한국의 백세인," "100세인 이야기" "웰에이징", "백세 엄마, 여든 아들," "거룩하게 늙는 법," "코로나19가 바꾼 백세시대의 미래"등을 저술.
현재는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노화과학연구소와 한국백세인연구단 고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 고문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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