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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들 사정도 녹록지 않다. 국내 프로젝트를 상장하려고 해도 '그림자 규제'에 발목 잡힌다. 법령엔 없는 규제지만, 담당 부처가 고개 한번 저으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규정이 아니라 눈치를 따라야 하는 형국. 이런 상황에서 어떤 거래소가 국산 프로젝트를 상장하겠는가. 상장심사위원회가 아니라, '눈치심사위원회'가 된 셈이다.
그 와중에 정부는 '스테이블 코인' 이야기만 줄기차게 한다. 금융 안정성, 이해한다.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 보는 건,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보려는 짓이다. 디지털자산 산업의 육성, 블록체인 기술의 진흥, 이 둘은 아예 정부의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산업'이 아니라 '위험 요소'로만 간주하는 태도.
문제는, 세상은 그렇게 멈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블록체인 기반 증권 거래 플랫폼을 구축하고, 유럽은 디지털 유로 실험에 나섰다. 중동은 아예 블록체인 허브가 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 사이 한국은? 여전히 '허가받은 거래소 안에서 외국 코인이나 거래하세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할 건가.
디지털 금융 강국을 이야기한 지도 오래다. 그러나 현실은 '디지털 금융 소극장'조차 못 된다. 거래소만 존재하는 디지털자산 생태계는, 결코 산업이 아니다. 기술이 숨 쉴 공간이 없고, 자금이 돌지 않으며, 새로운 시도가 모두 규제에 가로막힌 생태계는, 생태계가 아니라 정글이다. 그리고 그 정글에는 '사자'도 없고 '토끼'만 남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정책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도 중요하지만, 블록체인 산업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 숨 쉴 수 있도록 규제를 정비하고, 기술 개발에 자금을 공급하고, 시장 진입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무엇보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 불문율과 유권해석으로만 산업을 이끌 수는 없다.
그리고, 해외에 문을 열어야 한다. 해외 블록체인 기업을 받아들이고, 기술을 배우고, 경쟁하고, 우리 기업도 당당히 세계로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자고 만든 게 디지털이고, 그러자고 하는 게 산업이다.
정책은 선택이다. 지금처럼 특정 분야에만 갇혀 있다면, 결국 우리는 '기회'를 놓친다. 싹도 틔우지 못한 채 말라버릴 수 있다. 이 산업에 필요한 건 규제가 아니라 결단이다.
늦지 않았다. 눈을 뜨자. 두 눈 다.
/고진석 한국디지털자산평가인증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