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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지 스토리’, 기억을 담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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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9. 02. 06:00

건립의 과정과 도시의 기억을 사진 언어로 풀어낸 개관 기념전
10월 12일까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여섯 작가가 전하는 실험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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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원 작가의 포토몽타주 작품과 조경가 권지연의 협업으로 구현된 '숲의 천이' 전시 공간.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개관을 기념해 선보이는 첫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Storage Story)'가 오는 10월 12일까지 1층 로비와 2층 1·2전시실, 영상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건립 과정을 단순한 행정 절차나 물리적 성과로 한정하지 않고, 감각의 층위와 매체의 다중적 서사를 통해 새롭게 조망하며, 사진이 기록의 매체를 넘어 동시대 예술 실천의 장으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전시 제목 '스토리지 스토리'는 미술관이 위치한 창동(倉洞)의 지명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으로 곡식을 저장하던 '창(倉)'의 의미는 오늘날 이미지와 기억, 작품과 자료를 보관하는 수장고의 기능으로 이어지지만, 이번 전시는 그 의미를 단순히 '저장'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전시는 수장고를 예술적 해석과 역사적 맥락이 교차하는 '발화의 장'으로 확장한다. 이에 따라 미술관의 형성 과정과 지역의 역사, 기술 환경, 감각과 경험이 얽힌 복합적 서사를 '재료', '기록', '정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낸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단순히 미술관의 시작을 알리는 개관전이라는 기능을 넘어, 사진이 동시대 미술 속에서 어떤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는지 묻는다. 이번 전시는 특히 대중과 전문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감각을 지향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기록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와 해석을 생산하는 '살아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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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신 작가의 '기능적 함수의 오작동' 시리즈가 전시된 스토리지 1 공간.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스토리지 1 - 재료(Material)

스토리지 1은 사진을 단순한 기록 매체가 아닌 동시대 예술의 표현 도구이자 '재료'로 바라본다. 서동신과 원성원은 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요소와 이미지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며, 사진의 물질성과 시간성을 동시에 사유한다.

서동신은 '보는 행위'와 '인식의 과정'을 실험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는 사진의 본질을 정해진 의미로 소비하는 것에 저항하며, 시선을 멈추고 새로운 해석의 틈을 열어두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번 전시의 '기능적 함수의 오작동' 시리즈는 건립 기록과 그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기능적 사진들을 기반으로, 기능적 맥락에서 분리한 이미지들을 낯설게 배열한다. 제품의 용도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던 사진들이 원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이 겹치면서 다층적인 해석을 유도한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에서는 미술관 계단실, 내부 사무실의 파쇄기, 건물 구조물의 이미지를 겹쳐 공간과 사물의 관계를 재조합했고, '필요에 따라 맞춰지는'에서는 카탈로그 속 기능 이미지와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현실과 추상의 경계에 있는 '재료로서의 사진'을 강조했다.

원성원은 건축과 자연, 인간의 관계를 촘촘히 엮어내는 포토몽타주 작업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그는 건축의 본질이 결국 자연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서울시립사진미술관 건립 현장을 기록한 이미지와 전국 각지의 풍경 사진을 정교하게 재구성했다. '완성되지 않은 건축, 지어지는 중인 자연'은 미술관 외벽과 녹색 식생을 병치해 건축이 완공을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자연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기다리는 바위'는 공사 현장의 내부 풍경과 거대한 바위, 풀과 흙을 함께 포착해 '인간의 손길로 이동하지 않은 잠재적 건축 재료'의 시간성을 포착한다. 조경가 권지연과의 협업으로 구성된 '숲의 천이'는 전시장 공간의 굴곡을 생태학적 변이 과정에 빗대어 구현했다. 바닥에서 시작해 점점 언덕을 이루며 녹음이 짙어지는 공간은, 자연과 건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을 몸으로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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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성 작가의 '창동노트' 시리즈. 창동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스토리지 2 - 기록(Record)

사진의 원형적 기능인 '기록'을 출발점으로 삼은 스토리지 2는, 기록이 단순한 현실 재현을 넘어 시간과 장소의 층위를 다시 쓰는 힘을 탐구한다. 정지현과 주용성은 건립 과정과 창동이라는 장소의 맥락을 다층적으로 포착하며, 기록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각화한다.

정지현은 서울시립사진미술관 건립 현장을 2년에 걸쳐 기록했다. 수만 장의 사진은 단순한 아카이브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공사와 변화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담아낸 '축적된 기억'이다. 'Cast Capture_SP #02-4622'는 실크스크린 인쇄로 여러 레이어를 겹쳐 건축의 층위를 표현했다. 철근 구조물과 콘크리트, 공사 현장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관객의 시야를 장악하며, 빛의 반사로 인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표면은 시간의 변화를 은유한다. 박상민과 협업한 'Cast Capture_SD 01_2421'은 기록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3D 영상 작업으로, 현실과 기록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가상의 공간을 구현한다. VR 장치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Cast Capture_VR 01-02_9992'는 현실의 공간과 과거의 기록이 겹치는 입체적 감각을 제공하며, 시간의 흐름을 걷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천장에 매달린 3D 프린트 작품 'Cast Capture_3P 02_7043'는 리쏘페인 기법으로 빛을 투과시켜 건립 과정의 순간을 떠오르게 만들며, 기록과 기억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주용성은 창동이라는 장소의 역사와 정체성을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지역 주민의 구술과 자료를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장소의 서사를 되살렸다. '녹천마을 빨래터, 창동노트'는 초안산의 옛 빨래터를 촬영한 사진으로, 돌과 풀, 고인 물에 비친 빛의 풍경 속에 세월이 응축되어 있다. '녹천 이유 대감 터주가리, 창동노트'는 음력 10월 1일에 치러지는 치성제를 기록하며, 개발로 인해 변한 공간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공동체의 전통과 기억을 담았다. '북한산 채석 흔적, 창동노트'는 북한산의 바위에 남아 있는 채석의 흔적을 통해, 조선 후기 북한산성 건설과 그 시절 사람들의 노동을 소환한다. 그의 사진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장소와 사람,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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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영 작가의 'AI 사진 복원사의 방법론' 프로젝트 전시 공간. 관객이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AI 복원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 사진 전형찬 선임기자
◇ 스토리지 3 - 정보(Information)

스토리지 3은 사진을 정보의 구조로 바라보는 실험이다. 데이터베이스와 알고리즘, 인터페이스 속에서 재구성되는 이미지의 흐름을 탐색하며, 사진이 어떻게 동시대의 '정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지에 주목한다.

정멜멜은 사진의 본질과 기능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수장고'를 다시 읽는다. '벽 없는 수장고: 프레임 밖의 이미지들'은 미술관이 수집해온 소장품과 자료를 동시대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 설치 작품이다. 1950년대 현대칼라 광고 이미지와 1970년대 대한광학공업의 '베릭스 HQ' 카메라, 그리고 한국 사진사의 다양한 기록들을 재촬영하고, 디지털로 변환하고, 다시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시각 언어로 변환했다. 아카이브 속 자료는 더 이상 과거의 유물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의 감각 속에서 재배열된 현재의 풍경으로 관객 앞에 놓인다.

오주영은 AI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계의 시선'을 탐구한다. 'AI 사진 복원사의 방법론' 프로젝트는 가상의 AI 사진 복원사가 소장품 데이터를 학습하며 원본성과 진실성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는 서사로 전개된다. '아우라 복원 지표' 시리즈는 고해상도 데이터의 분석과 이미지 네트워크의 재배치를 통해 사진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계 감상 시스템'에서는 관객이 직접 작품 감상에 참여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버튼을 누르면, AI는 그 선택을 학습하고 다시 해석해 새로운 결과를 돌려준다. 이 참여형 과정은 인간의 해석과 기계의 해석이 교차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드러내며, '누가 주체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단순한 개관전이 아니다. 건립의 과정과 그 안에 얽힌 기억, 기술과 감각의 층위를 세밀하게 풀어내며, 사진이 어떻게 기록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의 발화점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는 미술관이 단순한 저장고가 아니라, 기억과 해석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재배열되는 '살아 있는 장소'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는 10월 12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기간 중에는 작가와의 대화와 지도 제작 워크숍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일부 프로그램은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운영되므로, 자세한 정보와 예약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전형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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